‘우지 파동’ 악몽 딛고…삼양식품, ‘삼양1963’으로 명예 회복 시동

‘우지 파동’ 악몽 딛고…삼양식품, ‘삼양1963’으로 명예 회복 시동

기사승인 2025-11-03 18:25:52
김정수 부회장이 3일 서울 중구 보코서울명동 호텔에서 열린 삼양식품 신제품 출시 발표회에서 우지 유탕으로 만든 삼양 1963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양식품이 1989년 ‘우지(牛脂·소기름) 파동’ 이후 단종됐던 우지 라면을 36년 만에 다시 선보인다. ‘삼양1963’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신뢰를 되찾으려는 삼양식품의 복원 선언이다. 이번 행보가 과거를 넘어 미래의 미식 문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삼양식품은 3일 서울 중구 보코서울명동 호텔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열고 ‘삼양1963’을 공개했다. 1963년 출시된 한국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의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리미엄 제품이다.

이번 행사는 삼양식품의 창업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는 남대문시장 인근에서 열렸다. 창업자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은 19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 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사람들을 보고 한국 최초의 라면을 개발했다. 그는 “먹는 것이 족하면 천하가 태평하다(食足平天)”는 신념으로, 한 그릇의 라면이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길 바랐다.

삼양식품은 이번 ‘삼양1963’을 통해 그 철학을 현대적으로 되살리고자 했다. 삼양 브랜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프리미엄 미식 라면으로, 과거 삼양라면의 핵심 재료였던 우지를 복원하되 현대적인 제조기법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면은 동물성 기름 우지와 식물성 기름 팜유를 황금비율로 섞은 ‘골든블렌드 오일’로 튀겨 고소한 향과 감칠맛을 살렸다. 조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육수와 어우러져 한층 깊은 풍미를 낸다. 국물은 사골육수를 베이스로 무·대파·청양고추를 더해 깔끔하고 얼큰한 맛을 완성했다. 후레이크는 큼직한 단배추, 대파, 홍고추를 사용해 식감과 색감을 풍부하게 했으며, 동결건조 후 후첨 방식으로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오래 유지하도록 했다.

특히 이날은 ‘우지 파동’이 일어난 1989년 11월3일로부터 정확히 36년이 되는 날이었다. 삼양식품은 상징적인 이 날을 선택해 브랜드의 정통성과 기술 혁신 의지를 함께 드러냈다. 당시 ‘우지 파동’은 삼양라면의 역사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다. 익명의 투서로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이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자체 조사로 인체에 무해하다고 밝혔고,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지만 이미 브랜드 이미지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삼양식품은 이후 라면 제조에 우지를 쓰지 않고 식물성 팜유만 사용해왔다.

이번 재출시는 그런 오랜 상처를 마주하는 선택이었다. 김 부회장은 “우지는 삼양라면의 풍미를 완성하던 진심의 재료였으며, 정직의 상징이자 삼양식품이 추구해온 ‘진정한 맛의 철학’이었다”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품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삼양식품의 ‘정직한 복원’이라는 상징성도 담고 있다. 김 부회장은 “삼양1963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초석이며, 한국의 미식문화를 세계로 전파하는 글로벌 식품기업이 되었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한 번의 혁신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