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서 또 외면 받은 K-철강…정부 지원책, 탈출구 될까

관세 협상서 또 외면 받은 K-철강…정부 지원책, 탈출구 될까

- 4일 산업통상부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 발표
- 철근 등 범용재 설비 조정, 중소·중견 수출 보증 강화
- K-스틸법 계류 속 한 줄기 희망…“보완책·이행방안 지속 마련돼야”

기사승인 2025-11-05 06:00:08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EC룸에서 장영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김형일 IBK기업은행 전무, 이희근 포스코 사장,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최삼영 동국제강 사장, 오치훈 대한제강 회장, 이경호 한국철강협회 회장 등 철강업계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철강업계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제공 

중국산 공급 과잉,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장기간 불황을 겪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도 홀로 고율 관세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실질적 지원책이 절실한 상황에 놓였다. 업계에선 속도감 있는 대응과 함께, 실효성 높은 후속 대책들이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 및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초 10월 내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정부 조직개편 및 국정감사 일정에 밀려 이달 초 발표됐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철근·형강 등 범용재의 선제적 설비 조정이다. 철근은 수입재 침투율이 3% 수준으로 낮지만, 건설경기 침체로 재고가 쌓여감에 따라 앞서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근생산기업들이 관련 공장을 셧다운한 바 있다. 현재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업계의 부진이 사실상 범용제품 공급 과잉에서 시작된 만큼, 이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으로 풀이된다.

기존 철강제품 수출업체 대상 5700억원 규모 특화 지원책과 더불어, 4000억원 규모 ‘철강 수출 공급망 강화 보증상품’의 신설도 주목된다. 포스코와 기업은행이 200억원을 출연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역보험공사가 총 4000억원 규모의 우대보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번 제도는 통상장벽 강화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 협력사와 철강 파생상품 생산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불공정 수입재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도 포함됐다. 정부는 내년부터 △수입 철강재에 대한 품질검사증명서(MTC) 도입을 의무화하고, △제3국 및 보세구역을 통한 반덤핑 관세 회피를 차단하는 등 우회 덤핑 규제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 △조선·에너지·자동차·방산·우주항공 등 분야에 활용되는 특수탄소강 등 미래 유망 품목에 대한 R&D 지원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저탄소 공정 전환의 핵심 기술인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도 차질없이 추진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지난 9월 ‘미 관세협상 후속 지원대책’ 이후 정부의 철강 관련 고도화 방안이 적기에 연이어 발표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평가하고 있다. 

앞서 지난 아시아태평양(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후속 협상 과정에서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철강을 ‘미국 안보의 핵심 품목’으로 지정함에 따라 철강 관련 관세는 여전히 50% 고율로 유지되고 있다. 이로 인해 올 3분기 대미(對美) 철강 수출액(한국무역협회)은 7억7069만달러(약 1조1100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7%나 감소했다. 

여야 의원 106명이 지난 8월 발의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K-스틸법)’마저 정쟁 속에 3개월째 위원회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 발표로 일단 한시름 덜 수 있게 된 셈이다.

익명을 요청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책이 실제 효과로 나타날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가기간산업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업계와 꾸준히 소통해 늦지 않은 시점에 대책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보완해 나가야 할 점도 존재한다. 포스코·현대제철 등 이른바 국내 ‘빅2’ 철강사가 올해 부담할 미 관세 규모만 약 4000억원으로 추산되는 데다, 내년부터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할 예정이어서 수출 관련 지원책의 규모가 현재보다 더 증가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수소환원제철 등 고부가·저탄소 공정 전환을 위한 지원 확대, 급격히 상승한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 절감도 시급한 상황이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과 관련해 “수출 보증 강화뿐만 아니라 ‘감산’에 대한 대책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업계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초기에 선제적인 대응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다만 이번 발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산업의 위기를 살피면서 후속 대책이나 구체적인 이행 방안 등이 계속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특히 미래적 관점에서도 수소환원제철 등 고부가·저탄소 지원에 대한 것들이 구체화돼야 하는데, 현재 정부 조직개편 등 거버넌스 문제와도 얽혀 있기 때문에 부처와 업계 간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