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을 따라 다시 찾은 발자취…손기정의 길과 분단의 강 [광복 80년 기획⑦]

압록강을 따라 다시 찾은 발자취…손기정의 길과 분단의 강 [광복 80년 기획⑦]

단동에서 신의주를 마주보다, 강 위에 남은 시간들

기사승인 2025-11-17 06:00:10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 사이에 흐르는 압록강. 한국기자협회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의 단동과 북한 신의주는 서로 마주보고 있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지만, 그 흐름 속에 조국의 분단과 함께 잊힌 기억이 있다. 광복 80년, 접경 지역을 따라 걷다 보면 역사의 상흔과 함께 그 위를 달렸던 한 인물의 발자취가 떠오른다.

압록강, 독립으로 향한 길

압록강은 조선과 만주를 가르는 경계였지만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자유를 향한 통로였다. 1900년대 초 이범윤, 홍범도, 김동삼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강을 건너 만주로 나아갔다. 총을 든 독립군의 행렬이 지나간 이 길 위를 수십 년 뒤 손기정이 달렸다. 시대는 달랐지만 그들이 향한 곳은 같았다.

국립중앙박물관 ‘두발로 세계를 제패하다’ 전시관에 설치된 미디어월. 유희태 기자

손기정, 국경을 넘어 달린 청년

손기정 선생은 일제강점기 조선 청년들의 상징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지만, 일장기를 단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그의 고개 숙인 시상식 사진은 식민지의 현실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금메달 획득의 발판이 된 손 선생의 훈련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단동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그는 이 지역에서 마라톤을 준비하며 국경을 오가고 노동과 훈련을 병행했다. 손기정은 이곳에서 열린 지역 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쌓았고 훗날 세계 정상에 오를 체력과 정신을 다졌다.

단동과 신의주 사이에 있는 압록강 단교. 송한석 기자

손기정이 달렸던 다리는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끊어졌고 현재는 관광지로 변해 있다. 단교에 오르자 맞은편의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다리 끝에 가보니 더 나아갈 수 없게 막혀 있었다. 

중국 단동 유람선에서 바라본 신의주의 모습. 송한석 기자

신의주는 과거 독립운동의 배후이자 해방 직후 북조선의 관문이었다. 1945년 소련군이 진입하면서 새로운 체제가 시작된 곳이며 북한은 신의주를 중심으로 경제특구를 만들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을 따라 신의주를 바라보면 최신식 건물들이 지어져 있다. ‘식량보급소’와 ‘약국’ 간판이 적힌 건물들도 보인다.

압록강에 설치된 신압록강대교와 단교. 송한석 기자

유람선에서 내려 단교로 향했다. 다리를 따라 걸으며 다시 신의주를 살폈다. 북한 쪽은 움직임이 거의 없었고 간헐적으로 트럭 몇 대가 옆에 새로 건설된 ‘신압록강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단동 쪽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다리 위를 지났다. 끊긴 철교와 개통되지 않은 새 다리가 나란히 선 풍경은 분단의 현실과 연결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지금의 한반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단교 끝에서 강을 바라봤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강물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강 건너 도시는 정지된 듯했고 이쪽 강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십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건넜던 강 위에는 이제 오가는 관광객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송한석 기자
gkstjr11@kukinews.com
송한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