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발의된 법안대로라면, 오히려 환자들이 응급실에서 더 많이 사망하게 된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최근 국회에 제출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에 대해 필수 인프라와 제도 정비 없이 법안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며 반발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7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윤 의원이 발의한 응급실 이송·전원체계 개편을 위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일선 응급실의 현실을 외면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사유를 보건복지부령으로 명시 △119 구급대원의 전화 확인 절차 삭제 △병원이 환자 수용이 불가능한 경우 중앙응급의료상황센터에 사전 고지하도록 하는 ‘수용불가 사전고지 제도’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정부가 전문가 의견 없이, 환자를 사전 조율 없이 응급실로 보내던 20년 전 방식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응급실의 수용 능력과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무시한 채 법만 개정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조치라는 주장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응급실 뺑뺑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담은 여러 대안을 복지부에 제안했지만, 전혀 수용하지 않고 응급실이 환자를 무조건 받도록 하는 법안만 나온다”며 “응급실은 환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돌려보내는 것인데, 이를 법으로 억지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구급대원이 병원 두 곳 이상 전화하면 그게 ‘응급실 뺑뺑이’인지, 내일 진료받아도 될 환자가 오늘 응급실 찾는 건 아닌지 아무도 구분하지 못한다”며 “정부는 응급실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 게 아니라 현장 전문가들과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응급의학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응급의료를 붕괴시킬 강제수용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응급실 과밀화 해결과 중증환자 진료권 보장을 위한 경증환자 수요 억제조치를 마련하라 △최종치료 인프라 확충과 취약지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라 △응급의료에 대한 민형사 면책조치를 마련하고 최종치료 책임 전가를 중단하라 △현장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고 올바른 해결책 마련을 위한 논의체를 구성하라 등의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정치권이 법적 위험 경감, 인프라 구축 등의 전제 조건을 해결한다면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전제 조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응급실이 환자를 무조건 받도록 한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회장은 “응급실 뺑뺑이와 관련해 고민해야 할 점이 많은 상황에서 지금 무작정 응급실이 환자를 받도록 하면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법안에 반대한다”며 “현장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면 법안을 수용할 생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근본적인 원인을 짚으려 하지 않고 책임만 전가하려 해선 안 된다”며 “앞으로 정부에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더 강하게 의견을 내려 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