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게 어렵지 않아요. 정말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우연한 기회로 아이돌로 데뷔해 24년째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정려원(44)의 직업 만족도는 높다. 그런 그에게 올해 또 하나의 축복이 찾아왔다. 2022년 단막극에서 출발한 ‘하얀 차를 탄 여자’를 스크린으로 선보이게 된 것이다.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감독 고혜진)는 피투성이 언니를 싣고 병원에 온 도경(정려원)이 경찰 현주(이정은)에게 혼란스러운 진술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서스펜스 스릴러다. 지난 10월29일 개봉했다.
정려원은 드라마 ‘검사외전’에서 조연출로 만났던 고혜진 감독의 입봉을 돕기 위해 출연을 결심했다. 그때만 해도 ‘하얀 차를 탄 여자’는 영화가 아니었다. 당초 2부작 드라마로 제작됐지만, 고 감독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하면서 시청자가 아닌 관객의 평을 받게 됐다.
“지난겨울에 입었던 코트를 꺼내 입었는데 주머니에 10만원이 있으면 너무 좋잖아요. 그런 기분이에요. 그동안 영화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저 고혜진 감독을 도와주고 싶었던 건데 의도치 않게 영화로 나온 거라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도경은 정려원이 그간 입었던 옷과 다른 결이었다. 이정은이 추리극의 서술자라면 그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복잡한 캐릭터였다. 미친 사람처럼 울고, 언니의 가스라이팅으로 무력감에 빠지고, 담배를 피우며 자유를 만끽하고, 이 모든 모습이 도경이었다.
“해내기 힘들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캐릭터가 너무 다르긴 했죠. 그래도 2부작이니까 자유롭게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액자식 구성이고 로케이션이 같으니까 헷갈리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은 도경이, 사람들이 상상하는 아픈 도경이, 정신이 또렷한 도경이, 이렇게 나눠서 연기했어요. 그리고 사실 원래 추석 특집극이었어요. 추석에는 TV 보시면서 식사도 준비하시고 그러니까, 제가 휘어잡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더 과해도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특히나 정려원의 눈물 연기가 빛을 발했다. 시종일관 촉촉하게 젖어 있는 눈은 공감과 몰입을 높였다. 그의 인생 캐릭터로 꼽히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유희진이 떠오르기도 한다. 유희진이 주차장에서 눈물을 방울방울 흘렸던 신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단다. “아빠는 그렇게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매사 서러워 보인다고요(웃음). 아름답게 울 수도 있는데 뭐가 그렇게 서럽냐고요.”
촬영 기간은 14일. 현장은 시간이 가는 게 스트레스일 정도로 좋았단다.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주인의식을 가지고 촬영에 임한 덕분이다. “쉬는 사람이 없었어요. ‘일 잘하는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안 되는 것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설명이 필요 없었어요. ‘얘기를 딱히 나누지 않았는데 이렇게 됐다’고 느낀 지점이 몇몇 있었어요.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다 똑같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정은은 이러한 현장의 구심점 같은 존재였다. 정려원은 그를 “어른”이라고 표현했다.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시는데 감히 따라 할 수도 없어요. 제가 가끔 혼자 끙끙거리는 편인데 감정을 언어화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감정 주머니가 있다면 저는 자주 쓰는 주머니가 눈물이었던 것 같아요. 화가 나도 울고 속상해도 울고 공감이 가도 울고. 연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전부 한 주머니에 다 넣으니까 답답했어요. 따로 넣어보라고 말씀하셔서 훈련했는데 정말 나아졌어요.”
정려원은 2000년 그룹 샤크라 멤버로 연예계에 입문해 2002년부터 연기자로서 대중을 만나왔다. 어느덧 활동 25주년을 넘긴 그는 “숫기가 없어서 가수로 데뷔하지 않았으면 배우로 데뷔하는 꿈을 못 꿨을 것 같다”며 반추하며 “제 성향이 배우랑 참 잘 맞다”고 감격했다.
“제가 느낀 점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해요. 사용해 보고 좋았던 아이템을 소개하고 한 통씩 돌리는 스타일이에요. 드라마라면 줄거리를 말해주기도 하고요.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심리상담사를 했을 것 같아요. 공감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모두 배우에게 있으면 좋은 기능들이고, 제가 적합하게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으니 축복받은 삶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