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대출의 벽…‘950’점 초고신용자만 넘는다

높은 대출의 벽…‘950’점 초고신용자만 넘는다

기사승인 2025-11-12 06:00:11
쿠키뉴스 자료사진.

연말 은행권 대출 문턱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의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와 이른바 ‘신용 점수 인플레이션’ 현상이 맞물리면서다. 자금이 초고신용자에게 쏠리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금융 취약계층이 비제도권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2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 9월 신규 취급된 분할상환 방식 주담대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50.93점(KCB 기준)으로 집계됐다. 1년 전(940.6점)보다 10.3점, 올해 1월(939.6점) 대비 11점 이상 오른 수준이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 958.31점 △하나은행 952.00점 △KB국민은행 951.00점 △우리은행 947.34점 △NH농협은행 946.00점 순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이 대출 문턱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6·27 대책을 통해 은행권에 올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을 기존 목표 대비 절반으로 줄이라고 주문했다. 이에 은행권은 연말을 앞두고 대출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취급 한도를 줄이거나 대출모집인을 통한 접수를 중단하는 등 총량 조정에 나선 것이다. 

다만 은행권은 고의적인 고신용자 선별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담대의 경우 신용도별 심사 전략은 최소한으로 운영 중”이라면서 “DSR, LTV, DTI 규제에 맞춰 시장 환경상 자연스럽게 고신용자가 유입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최근 금융 소비자들의 신용도가 전반적으로 상승한 현상도 배경으로 지목된다. 과거 신용 점수는 1000점 만점에 900점만 넘으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젠 950점은 넘어야 고신용자로 보는 분위기다.

업계는 이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디지털 금융 확산을 꼽는다. 토스 등 핀테크(금융+테크) 업체들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용점수 관리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면서, 개인 차원에서 손쉽게 신용점수를 올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담대 평균 신용점수 상승의 주된 요인은 전체적인 ‘신용 점수 인플레이션’ 현상”이라면서 “여기에 고가 주택 구입자의 신용도가 높은 특성도 평균 점수 상승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신용점수의 상향 쏠림으로 자금이 950점 초반대 초고신용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신규 취급액 중 49%(약 9조3000억원)가 신용점수 951점 이상 차주에게 몰렸다. 반면 800점 이하 차주 비중은 2021년 9%에서 올해 7월 5%로 감소했다. 

연말 ‘대출 보릿고개’가 현실화하면서, 자금이 절실한 실수요자와 취약차주들이 제도권 밖 고금리 대출로 내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1금융권 대출 통로가 초고신용자 중심으로 좁혀질수록 중·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이 더욱 위축될 것이란 지적이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저신용자 최대 6만1000명이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차주의 대출 여건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신용점수 상향 평준화로 인한 변별력 약화를 완화하기 위해 신용평가 정보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은행권은 금융 정보가 부족한 초년생 등 신파일러(Thin Filer) 고객들을 포용하기 위해 통신 정보·공과금 납부 정보를 신용 평가에 반영하는 등 평가 요소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금융 취약계층의 문턱을 낮춰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