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도 안 남은 석유화학 구조조정 ‘데드라인’…눈치싸움 속 시작은 어디서

두 달도 안 남은 석유화학 구조조정 ‘데드라인’…눈치싸움 속 시작은 어디서

- 대산 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 사업재편 초안 마련
- 정부 발표 이전부터 논의해 왔기에 가능…다른 산단은 막막
- 데드라인 임박, 정부 압박 강화…“선례 나와 봐야 알 듯”

기사승인 2025-11-12 11:00:11
여천NCC 제1사업장 야경. 여천NCC 홈페이지 캡처 

정부가 연말까지로 정한 석유화학 자율 구조조정 개편안 마련의 데드라인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어려운 셈법 속에 업계가 여전히 눈치싸움을 지속하는 모양새다. 선례가 될 첫 번째 사례가 공개된 후에야 연이어 개편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석화 주요 기업 중에선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충남 대산 산업단지)이 가장 빠르게 개편안을 마련해가고 있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공동으로 추진 중인 사업재편 초안을 이미 제출했다”며 “채권단 협의회 실사가 11월 내 마무리되길 기대하고 있으며, 정부도 같은 시점에 관계부처 협의를 마쳐 12월 중 사업재편안을 발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HD현대케미칼은 지난 2014년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6대 4의 비율로 각각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JV)이다. 롯데케미칼이 대산공장의 나프타분해설비(NCC) 등을 현물 출자 방식으로 HD현대케미칼에 이전해 설비를 통합하고, HD현대케미칼은 현금 출자를 통해 합작사를 세우는 방식이 유력하다. 

두 회사는 정부의 자율개편안 마련 요청 이전부터 이미 통합 및 재편 논의를 진행해 왔던 만큼, 상대적으로 빠르게 초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만 가격 산정, 지분 비율 등 현실적인 조건들과 더불어, 정부가 약속한 지원 방안의 실행안 등을 놓고도 추후 합의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다른 산업단지와 기업들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답보 상태다. 에틸렌 생산 규모가 전국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여수 산단의 경우 LG화학이 GS칼텍스에 여수NCC를 매각하고 합작회사를 설립해 NCC를 통합 운영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논의가 구체화되지 않았다. 여천NCC(한화솔루션·DL케미칼)와 롯데케미칼의 통합 가능성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유의미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울산 산단의 경우 대한유화·SK지오센트릭·에쓰오일 3사가 구조재편 전략 자문을 외부 컨설팅 기관에 의뢰하는 자율협약을 체결했지만, 감산 규모 등 실질적인 논의는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울산 산단은 NCC 생산능력이 174만톤(여수 642만톤, 대산 478만톤)으로 가장 작은 데다, 생산된 에틸렌이 모두 다운스트림(합성수지·고무 등 후방공정) 가동에 투입돼 정부의 일괄적인 NCC 감축 규모 지시에 다소 난감한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울산 산단의 NCC 가동률은 99.4%로, 여수(80.8%), 대산(70.0%) 대비 크게 높았다. 샤힌 프로젝트(350만톤)가 내년 울산에 완공될 예정이어서 늘어나는 캐파에 대한 부담이 있지만, 현시점에서 개별 기업이 이를 미리 고려한 방안을 내놓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다. 

김상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울산 남구갑) 역시 지난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 정책 질의를 통해 “(정부의 석화산업 구조개편이) 결국 기업의 자구 노력에 맡기겠다는 말로 들린다”며 “정부가 과잉 설비를 충분히 예측하고도 방치한 책임이 있어 단순히 기업의 문제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데드라인이 임박하면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대산 산단에서 논의가 일부 가시화되고 있지만, 일부 산단과 기업의 사업재편이 지지부진해 업계 진정성에 시장의 의구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업계가 골든타임을 허비한다면 정부와 채권금융기관도 조력자로만 남기는 힘들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업계에선 정부가 ‘얼마나 줄이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간 입장이나 상황이 달라 공개적으로 구조조정이나 통·폐합을 논의하기엔 리스크가 크고, 여러 각도에서 논의를 이어가고 있을 것”이라며 “짧은 시간 안에 개편안을 도출해야 해 업계에서도 막막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초안이 마련된 산단의 선례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