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적에도 은행권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발맞춰 기업 중심의 자금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하지만, 향후 건전성·수익성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에서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농협)은 향후 5년간 생산적·포용금융 자금에 508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현재 이재명 정부는 가계대출 규제 강화와 함께 기업 중심의 자금 공급을 확대하는 ‘생산적 금융’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금융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포용금융’ 정책도 병행 중이다.
은행들은 정부 방침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향후 은행 수익의 핵심인 순이자마진(NIM) 하락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남은 상황에서 가계부채 총량관리와 고강도 주담대 억제 조치가 시행되면서, 은행권 전반의 가계대출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더해 △은행 간 LTV 담합 과징금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과징금 △금융사 교육세 인상 △새도약기금 재원 분담 등 각종 비용 부담이 뒤따른다.
수신 부문에서는 질적 악화가 우려된다. 예금보호한도가 1억원으로 상향되면서 장기적으로 업권 간 수신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증시활황으로 인해 안정적인 정기예금 비중이 축소되고 있다. 조달금리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하방 압력이 예상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증시가 계속 호조를 보이면 은행의 예금 자금이 증시로 이탈할 수 있다”며 “은행은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 규제에 맞춰 대출을 운용해야 하는데, 예금이 줄면 그만큼 대출 여력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지난 10월 말 요구불예금 잔액은 641조1873억원으로 집계됐다. 9월 말 669조7238억원에서 한 달 새 28조5365억원 급감한 규모다.
건전성 부담도 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기업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가 훨씬 높게 잡힌다”며 “똑같은 돈을 쓰더라도 RWA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RWA가 늘어나면 은행의 핵심 자본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하락한다. 금융당국의 권고치를 맞춰야 하는 은행 입장에선, 정부 정책에 따라 기업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릴수록 자본 비율이 위험해지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특히 RWA 하한 규제가 현행 60%에서 65%로 상향 적용돼 자기자본비율 하락 압력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주식 보유 RWA 가중치를 400%에서 250%로 낮춰줬지만, 펀드를 통한 지분 취득은 IFRS상 (은행의) 자산으로 인식돼 RWA를 높인다”면서 “국가가 지원하는 혁신 산업 가중치만이라도 ‘핀셋’처럼 낮춰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리스크를 줄이면서 생산적 금융을 확대할 해법으로 AI 기반 신용평가모형(CSS) 고도화를 꼽는다. 외부 데이터와 머신러닝(ML) 기술로 중소기업과 중저신용자의 상환 능력을 정교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은행은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신용평가시스템을 손보며 기업 대출 한도와 은행 건전성 관리에 나서고 있다.
다만 혁신 기업을 위한 새 평가 모델 개발은 현실적인 한계가 많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기업 CSS는 막대한 데이터와 노하우가 필요해 인터넷은행도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영역”이라며 “기존 TCB(기술신용평가) 등급도 공신력이 높지 않아 참고 자료로만 쓰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새 모델 개발에 드는 막대한 비용이 자칫 금리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며 “개별 은행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정부가 공공 마이데이터를 공유하고 R&D를 지원하는 등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