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자유롭다. 낭만을 간직한 채, 실용을 입은 이자벨마랑의 여정은 계속된다.
보헤미안은 더 이상 낭만적인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Palais-Royal)에서 공개된 이자벨마랑(Isabel Marant)의 2026 S/S 컬렉션은 브랜드가 꾸준히 이어온 감성적 자유로움 위에 ‘실용적 리얼리티’를 덧입힌 결과물이다. 장식은 여전하지만, 그것이 표현하는 대상은 더 이상 이상향의 여인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의 여성이다.
26 SS 시즌에서 이자벨마랑은 브랜드의 근원적 언어인 보헤미안 시크(Bohemian Chic)를 한층 현실화했다. 워시드 실크와 저지, 자연스러운 질감을 살린 빈티지 가죽, 토템 자수와 비즈 프린지, 나무 껍질 질감의 주얼리 등은 수공예적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도심 속 일상복으로 손색없는 경계를 제시했다. 디테일은 여전히 정교하지만, 방향은 더 자유롭고 실용적이다.
실루엣에서도 변화의 흐름이 읽힌다. 허리에 묶은 스카프와 비대칭 주름, 물결치듯 흐르는 상의와 스커트의 드레이핑은 이자벨마랑 특유의 유연한 볼륨감을 살리며, 카고 팬츠나 오버사이즈 플랩 포켓 재킷, 루즈한 토트백 같은 요소는 기능적 감각을 더한다. 장식과 실용, 감성과 구조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컬러 팔레트는 자연에서 출발한다. 샌드, 에크루, 페일 옐로, 브론즈 등 내추럴 톤에 블루 데님과 플라워 자수가 얹히며 부드럽고 생동감 있는 리듬을 만든다. 여기에 블랙, 바이올렛, 카모플라주 패턴이 등장하면서 런웨이는 한낮의 햇살에서 밤의 여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연스러움’이 이번 시즌 마랑이 제시한 키워드다.
이자벨마랑의 이번 컬렉션은 장식의 절제보다는 ‘생활 속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실용성에 방점을 찍은 보헤미안 룩은 팬데믹 이후 일상 회복과 함께 부상한 ‘컴포트 리얼리즘(Comfort Realism)’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그 결과, 보헤미안의 감성은 더욱 현실적이고 스타일은 한층 유연해졌다.
‘이자벨마랑’의 25FW 컬렉션 매출은 지난해 24FW 컬렉션 대비 약 70%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셀럽들이 쇼장에서 착용한 ‘블라우스’ 품목은 전년 대비 1530%, ‘스커트’ 품목은 1120%, ‘베스트’ 품목은 280% 증가하며 브랜드 스타일링이 실질적인 판매로 이어지는 흐름을 입증했다. 런웨이 감성과 상업적 성과가 나란히 상승하는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2008년부터 이자벨마랑의 국내 유통을 맡아온 LF는 단순한 수입을 넘어 ‘브랜드 코-크리에이터(co-creator)’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 맞춘 단독 기획 제품은 물론, 일부 아이템은 글로벌 본사 전략에 반영되며 협업 모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현지화를 넘어, K-패션 감성과 프렌치 감각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상징적 사례로 읽힌다.
이자벨마랑이 이번 시즌 제시한 ‘자연스러운 실용성’은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한 결과물이다. 다만 과거보다 장식과 볼륨을 줄인 대신 일상성에 기운 만큼, 향후에는 보헤미안 특유의 낭만성과 예술적 서사를 어떻게 유지할지가 관건이다. 다만 실용으로 확장된 감성이 브랜드의 상징적 정체성과 충돌하지 않도록, 다음 시즌에는 디테일의 밀도를 다시 높이는 시도도 필요해 보인다.
LF 이자벨마랑 관계자는 “내년 S/S 시즌에는 정통 보헤미안 시크에서 한층 실용적이고 자연스러워진 내추럴 보헤미안 트렌드가 이어질 것”이라며 “LF는 국내 고객층의 취향을 반영한 전략적 바잉과 기획을 통해 브랜드의 장인정신과 디테일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