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보다 안전성…세계는 기준 바꾸는데, 10년 전 규제에 갇힌 한국 [AIDC 인프라 전쟁③]

효율보다 안전성…세계는 기준 바꾸는데, 10년 전 규제에 갇힌 한국 [AIDC 인프라 전쟁③]

美·日 ‘AI 데이터센터’ 국가 핵심 인프라 지정
“AI 경쟁력 중심은 전력효율 아닌 ‘안정성’”

기사승인 2025-11-17 06:00:10
직원들이 초고밀도 AI 데이터센터를 점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초고밀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하면서, 미국·일본·싱가포르 등 주요국이 앞다투어 ‘AI 전용 안전 기준’을 도입하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서버의 발열·전력 소모가 기존 인터넷데이터센터(IDC)의 10배에 달하고, 냉각 방식도 물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기존 규제로는 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10년 전 IDC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기존 규제로는 초고밀도 AI 데이터센터의 위험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는 이미 ‘AIDC 맞춤형’ 기준으로 이동…“IDC와 구조 자체가 달라”

전 세계 정책 당국이 공통적으로 인식한 사실은 AI 데이터센터가 기존 IDC와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AI용 GPU는 랙(rack) 1개당 60~100킬로와트(kW)의 전력을 사용한다. 일반 서버(5~10kW)의 10배 수준이다. 여기에 직접액체냉각(DLC), 직접칩냉각(D2C) 등 물 기반 냉각이 표준이 되면서 냉각수 누수나 압력 상승, 전력 변동이 즉각적인 서비스 중단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졌다. 

이 때문에 주요국은 ‘AI 데이터센터는 별도 안전관리 대상’이라는 전제를 공식화하고, 신규 규제 체계를 속속 마련하고 있다. 

미국, 세계 최초 ‘AI 데이터센터 가이드’ 발표

미국은 2024년 에너지부(DOE)를 통해 세계 최초의 ‘AI 데이터센터 시설 가이드’를 발표했다. GPU 열 분산 설계, 냉각수 누수 감지 센서, 자동 전원 차단·복구 체계 등 AI 데이터센터에 특화된 요건을 공식 기준으로 명시했다.

같은 해 국토안보부(DHS)는 데이터센터 전체를 ‘국가 핵심 인프라’로 지정해 물리·사이버 보안을 동시에 관리하기 시작했다. AI 데이터센터를 더 이상 기업 자산이 아니라 국가 보호 대상 시설로 규정한 것이다.

현재 미국 행정부는 인허가 기간을 기존 5~7년에서 1~2년으로 단축하는 대신, 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이중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일본, ‘수랭식 설비 국가 인증제’ 도입…싱가포르, ‘전력 총량제’ 기반 신규 센터 허가

일본은 2024년 ‘액체냉각 장비 국가 인증제’를 도입해 GPU용 냉각 장비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배관 압력·절연 성능·누수 자동 차단 구조 등 안전 기준을 법령으로 명문화하고,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또한 민간사업자나 반도체 기업, 전력사 등이 참여하는 ‘AI센터 안전위원회’를 운영해 2~3년 주기로 기준을 개정하는 시스템도 마련했다. 기술 변화 속도를 규제가 따라가는 구조다.

전력 제약이 큰 싱가포르의 경우 2024년 ‘전력 총량제’를 도입해 국가 전체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 상한을 설정했다. 신규 데이터센터는 전력효율(PUE), 냉각 효율, 재생에너지 사용률 등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 DLC 등 고효율 냉각 기술을 적용하면 허가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안전·효율 기준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EU·영국·아일랜드도 잇따라 규제 정비 가속화

유럽연합(EU)은 2023년 에너지효율지침(EED) 개정을 통해 500kW 이상 데이터센터에 에너지, 물 사용량, 냉각 성능 등 24개 지표를 분기별로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2030년 EU 전력의 3.2%가 데이터센터에서 소비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투명성 확보가 정책의 핵심이 됐다.

영국은 ‘사이버 보안 및 복원력 법안’을 통해 데이터 인프라 보호 체계를 정비했고, 아일랜드는 전력망 연결 시 현장 발전·저장 능력과 전력 수요 유연성 확보를 의무화했다.

한국은 여전히 ‘IDC 기준’…“효율 아닌 안정성이 경쟁력”

글로벌 흐름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일반 IDC 기준에 머물러 있다. 현행 법령에는 수랭식·액체냉각 등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기술에 대한 분류조차 없고, GPU 고발열 환경에 맞춘 화재·누수 기준과 초고밀도 전력 구조를 반영한 설계 규정도 부재하다. 사실상 일반 IDC 기준을 AI 데이터센터에 억지로 적용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정부 차원의 통일된 AI 데이터센터 안전기준 역시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2024년 발의된 ‘AI 데이터센터 진흥법’도 1년 넘게 국회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AI 데이터센터의 새로운 핵심성과지표(KPI)는 전력효율(PUE)보다 무고장 시간(MTBF)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PUE는 데이터센터의 전력효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낮을수록 좋다. MTBF는 시스템이 고장 없이 작동하는 평균 시간을 의미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하나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가 원자력 발전소 9기분(9기가와트, GW) 전력을 소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만개 AI 칩을 장착하고 구축비만 2000억 달러(약 270조 원)에 달하는 시설이 단 한 번의 안전사고로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안전 관리 체계와 제도적 대비가 산업의 지속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한국의 기술력과 구축 속도에 비해 부재한 제도적 기반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를 다루는 안전 규정은 사실상 공백 상태”라며 “규제 완화와 AI 특화 안전 표준 마련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이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