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보다 뒤처진 HPV ‘9가 백신’ 전환 속도…“관련 질환 감소 기대”

OECD보다 뒤처진 HPV ‘9가 백신’ 전환 속도…“관련 질환 감소 기대”

9가 백신 전환 53억원 증액안 반영
OECD 29개국 남녀 모두 9가 백신 도입
내년 만 12세 남아 HPV 백신 접종 지원
“초기 접종률 높지 않을 전망…대국민 홍보 필요”

기사승인 2025-11-18 06:00:05 업데이트 2025-11-18 07:40:41
게티이미지뱅크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예방 정책이 남아 지원에 이어 9가 백신 접종 전환을 위한 예산 증액까지 논의되면서 정책 확대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HPV는 감염 후 질병이나 암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길게는 수십 년이 걸려 미래세대 예방의 중요성이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내년 한국의 HPV 정책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도약하는 원년이 될지 관심이 모인다.

18일 국회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이 제출한 ‘2026년도 예산안’과 ‘기금 운용계획안’을 심의해 일괄 가결했다. 이 예산안에는 9가 HPV 백신 전환을 위한 증액안(53억400만원)이 포함돼 있다. 전체 HPV 백신 관련 예산도 당초 302억2800만원에서 353억3010만원으로 늘렸다. 이날 복지위를 통과한 예산안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된다.

HPV는 성생활을 하는 남녀 모두가 감염될 수 있는 대표적 성매개 감염병이다. 여성의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남성에선 생식기암, 두경부암 등을 일으킨다. 바이러스 유형만 200여 종에 달하며, 이 중 40여 종은 성접촉을 통해 직접 전파된다. 전 세계적으로는 매년 약 57만 명의 여성이 HPV 관련 암에 걸리는 것으로 추산되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최소 50% 이상은 일생 중 어느 때라도 HPV에 감염될 수 있다.

HPV는 백신 접종으로 대부분 예방할 수 있다. HPV 백신을 10대 초반에 접종하면 90% 이상 암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PV 예방접종은 현재 제한적으로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NIP)에 포함돼 있다.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만 12세 여아를 대상으로 HPV 예방백신 접종을 NIP로 도입했다. 2022년부터는 만 12~17세 여성청소년, 만 18~26세 저소득층 여성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대표적으로 HPV 백신은 4가와 9가로 나뉜다. 4가 HPV 백신은 4가지 HPV 바이러스를, 9가 백신은 9가지 바이러스를 각각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9가 백신은 자궁경부암, 질암, 외음부암,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등 HPV 관련 질환을 최대 96.7% 예방하며, 4가 백신 대비 20% 높은 예방 효과를 보인다. 또 4가 백신은 국내에서 잘 호발하는 52형과 58형 등 고위험 아형 예방을 포함하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국내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HPV 감염 여성 중 16형(25.6%) 다음으로 52형(25.2%)과 58형(11.5%) 감염이 매우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대한부인종양학회는 지난해 예방백신 접종 권고안을 개정해 “기존 2가 또는 4가 백신 접종자도 추가적 아형 감염을 낮추기 위해 9가 백신 재접종을 권고한다”고 안내한 바 있다.

HPV는 남성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국내 남성의 HPV 관련 질환 유병률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질병청이 발표한 2023년 통계에서 생식기 사마귀 환자 중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약 4.4배 더 높았으며, 주로 20~30대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경우엔 남성의 HPV 관련 구인두암 발생률이 여성 자궁경부암 발생률을 앞질렀다.

하지만 국내에서 남성은 HPV 예방접종 NIP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만 12세 남아에게도 HPV 백신 접종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남성 접종이 확대된 세계적 추세를 한참 따라잡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미 해외 주요국들은 9가 백신 남녀 접종으로 전환을 완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9개국이 남녀 모두에게 9가 백신을 지원하고 있다. 호주는 12~26세 남녀 대상 9가 백신 지원으로 HPV 감염율을 약 77%까지 낮췄으며, 대만은 지난 9월부터 동아시아 최초로 남녀 모두 9가 백신 접종 지원을 시작했다. 아울러 네덜란드는 내년부터 9가 백신을 NIP에 도입할 예정이며, 포르투갈 역시 9가 백신 지원 대상을 기존 10~18세에서 26세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HPV 백신 NIP 도입 10년 만에 접종 대상 확대가 이뤄지는 점에 환영했다. 민경진 고대안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대한부인종양학회 사무총장)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예방접종 프로그램에 HPV 백신이 가장 최신 백신인 9가 백신으로 남녀 동시 접종이 이뤄지게 됐다는 점은 경사스러운 일”이라며 “올해 7월 기준 38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만 여아에게만 2·4가 백신을 접종하는 국가였으나, 이제 국내 청소년들이 HPV 관련 질환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9가 백신 접종에 따른 기대효과로는 △HPV 관련 양성 및 악성 질환 감소 △질병 치료로 인한 의료비용 감소 등을 꼽았다. 민 교수는 “이미 9가 백신을 NIP 대상 백신으로 선정해 접종 중인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향후 한국에서도 HPV 관련 양성 및 악성 질환이 더욱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물론 10여 년 정도가 지나야 그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단기간의 효용성보다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4가 백신 지원에 머물러선 예방 효과에 한계가 있다며 신속한 9가 백신 전환 확대와 더불어 HPV 백신에 대한 인지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국내에선 HPV 백신이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HPV 백신의 남성 접종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라 초기에는 접종률이 높지 않을 수 있다”면서 “대국민 홍보사업을 통해 향후 남녀 모두 HPV로 인한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멀어질 수 있는 길이 열리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