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없이 AI와 로봇만으로 돌아가는 공장, 이른바 ‘다크팩토리’가 제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무인화 전략을 내놓으면서 ‘생산기지 위치’보다 ‘무인화 수준’이 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지표로 떠올랐다.
다크팩토리는 말 그대로 ‘불 꺼진 공장’이다. 사람이 상주하지 않아 조명이 필요 없고, AI와 로봇이 24시간 생산을 책임진다. 과거엔 기계가 단순 반복 작업만 맡았다면, 지금은 스스로 판단하고 공정을 최적화하는 ‘생산 의사결정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19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다크팩토리 시장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8.7% 성장해 2030년 약 1946억 달러(약 275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TSMC·샤오미 등 中, 사람 없는 공장 ‘현실화 단계’
대만 TSMC는 2023년 6월 준공된 후공정 전용 팹(공장) 6에 32km 길이의 자동 물류 시스템과 인공지능(AI) 디스패칭 알고리즘을 적용해 사람 개입 없는 완전 자동화 공장 운영을 시작했다. 이 팹은 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고성능 패키징 등 3D 적층 제품을 다루며, 실시간 로드밸런싱과 AI 품질 분석 기능까지 탑재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무인화 확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중국 제조 현장에는 산업용 로봇 약 40만대 이상이 가동 중이다.
샤오미는 2024년 10월 베이징 창핑에 준공한 스마트폰 공장에서 1초에 1대, 연간 10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공장 내 작업자는 거의 없으며, 자율이동로봇(AMR)과 AI 검사가 전 공정이 실시간 조율한다. 또한, 표면실장(SMT)부터 완제품 포장까지 로봇, 무인운반차(AGV), 천장 레일 컨베이어로 연결해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무인 생산 체계를 갖췄다.
이 외에 미국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수천대를 투입해 단순·반복 공정을 대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상하이 전기차 공장의 차체 프레스, 용접, 도장, 최종 조립 공정을 자동화해 운영하고 있다.
인텔도 ‘자율형 AI 팹’을 선언하며 AI 기반 공정 운영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본 소프트뱅크는 미국 내 1조달러(약 1470조원) 규모의 AI 산업단지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부 “2030년까지 AI 팩토리 500곳”…삼성·현대차·농심도 동참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2024년 10월 ‘AI 팩토리 얼라이언스’를 공식 발족하고, 현재 102개 수준인 AI 선도 공장을 2030년까지 500곳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얼라이언스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에너지,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뿐 아니라 농심 같은 식품기업도 참여해 AI 자율정비 시스템 도입에 나섰다. 정부는 제조 AI 모델 국산화, 공정 데이터 표준화, 로봇-설비 연동 플랫폼 구축 등을 중점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부와 대한상공회의소는 10일 ‘제조 인공지능 전환(AX) 얼라이언스’도 공동 출범시켰다. 총 1000여 개 기업·기관·학계가 참여하며, AI 팩토리·AI 제조서비스·AI 유통·휴머노이드·자율운항선박·AI 가전·AI 방산·AI 바이오·AI 반도체 등 10개 분과를 구성해 2030년까지 100조 원 이상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한다.
특히 AI 팩토리 분과는 2030년까지 지능형 공장을 500개 보급하고, 제조특화 AI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AI 제조서비스 분과는 2030년 제조업의 AI 활용률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관련 R&D 예산과 인프라를 기업 수요에 맞춰 확대 지원할 방침이다. 산업부의 내년도 AI 예산(안)은 1조1347억원으로 올해 대비 두 배 규모다. 제조 실증 공간, 가상 시뮬레이션 환경, 업종별 테스트베드 등을 제공하고, 국가 AI 컴퓨팅센터와의 연계도 검토 중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제조 AX는 기업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절박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2030년 제조 AX 1등 국가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삼성·LG디스플레이·현대차도 무인화 속도전
2025년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후공정 자동화율은 30%를 돌파했다. 특히 9월부터는 평택 3라인 패키징 공정에 AMR 100여 대와 AI 품질검사 시스템을 본격 도입하면서 무인 공정 전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 7월 ‘오토너머스 팹 TF’ 출범 이후 완전 무인 반도체 공장 로드맵을 구체화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GPU 5만 개 기반의 ‘AI 팩토리’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자동차는 싱가포르 전기차 공장 등에 적용할 ‘AI 다기능 로봇팔’을 개발 중이다. 생산 상황에 따라 스스로 조립·검사를 전환하는 셀 기반 제조가 핵심이다.
현재 우리나라 제조업계는 무인화를 통해 인건비 부담, 인력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다만 일자리 변화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2015~2022년 자동화로 약 730만 개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같은 기간 신규 기술직 일자리는 약 310만 개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단순 노동직은 감소하겠지만, 로봇 운영·AI 모니터링·공정 설계 등 고숙련 직무는 오히려 증가할 전망”이라며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 산업 구조에 맞춰 재편되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