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지역의료 못 살린다”…지역의사제 실효성 우려하는 이유는

“이대로는 지역의료 못 살린다”…지역의사제 실효성 우려하는 이유는

지역의사제, 국회 복지위 통과
“환자 없는 의사 양산 가능성” 지적

기사승인 2025-11-21 06:00:09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로비에 걸린 병원 홍보물 옆으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지역의사제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문턱을 넘어서며 법제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치권과 환자단체는 지역의사제 법안이 무너져가는 지역의료를 살릴 수 있는 정책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단발성 정책만으로는 ‘환자 없는 의사’를 양산하는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역 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의과대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전형으로 선발하고, 이들에게 졸업 후 10년 의무복무를 부여한다. 지역의사전형의 일정 비율은 해당 지역 출신 학생으로 우선 선발하도록 했다. 복무 지역과 기관은 법에 따라 지정되며, 장학금은 국가와 지자체가 함께 부담하도록 했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2027년부터 적용되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의 의대 정원 추계와 맞물려 구체적인 지역 의사 수가 확정될 전망이다.

정치권과 환자단체들은 지역의사제를 의사 수 부족으로 붕괴 직전인 지역의료를 살릴 방안으로 평가했다. 일본, 독일 등에서처럼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늘려 지역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개최한 지역의사제 공청회에서 “지역의사제는 일본과 독일, 호주 등에서 이미 검증된 제도”라며 “의사 부족으로 지역 필수의료 공백이 발생해 생명권과 진료받을 권리가 위협받는 지방 환자들을 위해 꼭 시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현 상황에서 지역의사제가 실질적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반론이 이어졌다. 정책 하나로 지역의료를 되살리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나 인센티브 논쟁은 지역의료 붕괴의 본질적 원인과는 거리가 있다며, 핵심은 지역 인구 감소라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증가해도 환자 수가 줄어드는 구조라면 환자 없는 의사가 양산되고, 의료 서비스의 질도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지역 한 의대 교수는 “지역 부동산 업체들이 인구 증감 추세를 볼 때 병원 숫자를 주요 지표로 사용한다”며 “사람이 있는 곳에 병원이 빠르게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보다 수도권에 의사들이 몰리는 이유도 지역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 병·의원 운영이 어려워지는 구조 때문”이라며 “지금 논의 중인 지역의사제는 의사를 두면 환자가 올 것이라는 가정이지만, 실제 현장은 다를 수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과 환자단체가 제시하는 일본·독일·호주 사례 역시 우리 현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본과 독일에서 말하는 ‘지역’은 한국의 광역시·도 단위로, 국내에서 논의 중인 의료 소외지역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한 의대 교수는 “해외 사례가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와는 의료 환경과 지리적 조건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해외에서도 도서산간지역은 병원을 가기 위해 1~2시간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이동이 빠른 나라에서 지역의사제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할지는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지역의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수도권 인구 유출을 막는 지역 발전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지역에 머무르는 환자 수가 늘어야 지역의료 기반도 유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지역 의대 교수는 “단발성 정책이나 인센티브만으로는 지역의료를 살리기 어렵다”며 “비수도권에 사람이 유입되고, 자연스럽게 지역 의사들이 다양한 환자를 진료하며 의료 역량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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