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시장 문 두드리는 4060…서울 중장년 10명 중 8명 “은퇴해도 일하겠다” [인생 2막, 일자리 2막①]

고용시장 문 두드리는 4060…서울 중장년 10명 중 8명 “은퇴해도 일하겠다” [인생 2막, 일자리 2막①]

2차 베이비부머 은퇴 본격화…복지 대상에서 잠재 노동력으로 재정의
구직자·기업 간 미스매치 여전…정부·지자체 지원체계 강화 필요

기사승인 2025-11-23 06:00:04 업데이트 2025-11-24 10:21:00
지난 9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발표한 ‘2025 서울시 중장년 일자리 수요 조사’에 따르면, 서울 중장년 인구(약 350만명) 중 289만명(82.6%)이 은퇴 후 재취업 등 구직 의향을 가진 것으로 추산됐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서울 노동 지형이 점차 바뀌고 있다. 저출생·고령화의 영향이다. 국내 인구의 18.6%를 차지하는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세대가 본격 은퇴를 맞은 상황 또한 고용시장 전환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중장년층은 전통적 복지 대상을 넘어 미래 경제 동력으로 재정의되는 중이다. 서울시도 사정은 비슷하다. 관내 인구의 38.5%가 중장년(40~64세)으로 나타난 만큼 일자리 성장 전략이 새로 마련되고 있다.

퇴직해도 일손은 그대로…은퇴 아닌 ‘다시 취업’ 열기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지난 9월 발표한 ‘2025 서울시 중장년 일자리 수요 조사’에 따르면, 서울 중장년 인구(약 350만명) 중 289만명(82.6%)이 은퇴 후 재취업 등 구직 의향을 가진 것으로 추산됐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겠다’는 응답도 61.5%였다.

이같은 결과의 배경엔 최근 은퇴 행렬에 합류한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특성이 자리한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이 세대는 교육 수준이 높고 근로 의욕도 강하다. 이들의 퇴직이 본격화하면 오는 2034년까지 연간 경제성장률이 0.38%p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앞선 1차 베이비부머 은퇴기(2015~2023년)보다 0.05%p 큰 충격이다.

그러나 근로 의지와 달리 재취업 연결은 쉽지 않다. 현장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는 ‘미스매치(불일치)’다. 오래 쌓아 온 경험·역량이 시장 요구와 맞지 않거나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부터 서울 중장년 일자리 지원을 맡아 온 재단에 따르면 구직자와 기업 간 불일치는 △기술 전환 격차 △고숙련 미스매치 △복지환경 격차 등으로 나타났다.

중장년은 경력과 경험이 풍부하지만 기업이 요구하는 디지털·AI 역량에 대한 부담이 높다. 기업 역시 문제해결능력·적응성·의사소통 역량 등을 중시하면서도, 기술 이해·활용 능력을 특히 강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무·관리직 중심 경력을 보유한 중장년층이 많아 단순·단기 일자리에 대한 만족도가 낮고 구직 기간이 길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기업의 중장년 채용 의향 역시 연령이 높아질수록 급격히 떨어졌다. 정보통신업의 경우 40대 채용 의향은 100%였지만 60대는 42.1%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책임감·전문성 등 중장년의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조직 문화 적응성과 기술 활용 능력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는 셈이다.

지난 7월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트홀에서 열린 ‘서울시 중장년 일자리박람회 2025’에 참석한 구직자들이 취업 게시판을 둘러보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중장년 일자리 수요 폭증…이제는 ‘시장 연결’이 관건

재단은 중장년 재취업을 개인 문제가 아닌 노동력 부족·국가 재정 부담을 완화할 사회적 과제로 보고 있다. 김지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팀 연구위원은 “중장년층은 자녀 양육과 부모 봉양 등 소비 부담이 크다”며 “전체 경제 성장 기여 비중이 높은 세대인 만큼 노동시장 이탈 문제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중장년을 인적 자원으로 어떻게 개발·활용·유통할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며 “일자리 발굴·직업 훈련 등 맞춤형 취업 지원 사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제도적 기반 없이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퇴직 후 경력을 살려 이·전직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40대부터 준비해 50~60대까지 이어지는 역량 개발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는 중소기업이 정년을 넘긴 고령자를 고용할 경우 지원금을 주고 있다”며 “이 같은 방식을 중장년층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장년 대상 일자리가 비교적 저숙련 노동에 치우쳐 있다는 한계도 지적됐다. 정 교수는 “현행 교육·고용 관련 공공 서비스는 질 낮은 일자리 연결에 그치는 면이 있다”며 “이로 인한 불만족은 노동시장 이탈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은퇴가 곧 일의 끝을 의미했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중장년층이 소득 공백 없이 노년까지 안정적으로 경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고 밝혔다. 노동력 감소가 본격화된 한국 사회에서 중장년의 경제 활동은 개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전략이 되고 있다.

노유지 기자
youjiroh@kukinews.com
노유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