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청약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사업을 포기한 시행사에서 몰수한 계약금을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계약금을 지역 공공시설 확충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배임이 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는 사이 시행사는 계약금 몰수가 과도하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28일 LH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1~6월 LH로부터 공동주택용지를 공급받았다가 계약을 해지한 사례는 총 11개 필지로 집계됐다. 해지된 사업지는 원주태장2, 경산대임 B3·M1, 파주운정3 1·2·5·6블록, 세종 금강펜터리움 더 시글로 4-2생활권H3블록, 남양주진접2지구 분양연립주택용지, 인천영종 분양아파트용지 등이다. 상반기에만 이미 11건이 해지되면서 연간 기준으로는 20건을 넘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 사전청약은 공공택지를 공급받은 민간 건설사가 해당 토지에서 짓는 주택을 사업 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미리 청약하는 제도이다. 문재인 정부 때 조기 분양을 통해 주택 공급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사전청약을 받은 사업장의 본청약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후 건설사가 계약금을 납부하고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정부는 지난해 5월 이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전문가들도 제도 도입 때부터 부작용을 우려해 왔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제도 도입 당시에도 토지가 확보되지 않고 사업성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전청약을 진행해 그 기간 동안 사정 변경 등 여러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는 반발이 있었다”며 “결국 ‘계약이 아닌 계약’을 하게 되면서 제도가 폐지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중단된 사업 재개 한다지만 ‘하세월’
대표적인 사전청약 피해 사례가 파주 운정3지구 주상복합용지 1·2·5·6블록(총 1656가구)이다. 해당 부지의 시행사였던 인창개발은 지난 2021년 12월 LH로부터 해당 부지를 7260억원에 낙찰받았지만,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 추진에 실패했다. 회사는 계약금 726억원(매입대금의 10%)만 납부하고 중도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후 연체 이자가 계약금을 초과하면서 올해 초 계약 해지 요건이 발생했다. LH는 중도금과 잔금 납부 기한을 수차례 연장하며 사업 정상화를 유도했지만, 결국 지난 5월 계약을 해지했다. 이 과정에서 계약금 726억원은 계약 조건에 따라 위약금으로 처리돼 LH에 귀속됐다. 이후 LH는 해당 토지를 재매각하고 나섰다.
사업 중단으로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당첨자들은 사실상 내 집 마련 기회를 잃고, 부지가 다시 매각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국토부는 지난 1월, 사업이 취소된 부지를 인수하는 후속 사업자가 민간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에게 우선적으로 입주 자격을 부여하도록 하는 구제 방안을 마련했다.
다만 피해자들은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상황에서 사업 취소 부지의 재매각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후속 사업을 맡은 시행사의 브랜드 인지도가 기존 업체보다 떨어지는 등 여러 문제를 모두 피해자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마 위에 오른 ‘위약금’…어디에 써야 하나
피해자들은 피해 지원 차원에서 LH가 회수한 계약금을 해당 지역의 공공시설 확충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약금 전액이 LH의 수익으로 귀속되는 것은 기관의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것. 이를 지역 공공개발 예산으로 환원해 지역 발전의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운정3지구 사전청약 피해자는 “당첨자들의 피해로 발생한 위약금인 만큼 반드시 운정신도시 내 공공 인프라 구축에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LH는 위약금을 피해지원에 활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계약금을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으며 특정 지구인 운정3지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법적으로는 계약금의 10%를 LH가 가져가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해지된 사업지들도 동일한 절차가 적용됐다. 11개 필지의 공급금액은 총 1조1394억원으로, 계약금 10% 기준에 따라 LH는 약 1140억원을 회수했을 것으로 보인다. LH 관계자는 “운정3지구 사전청약 당첨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주택 공급을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시행사 인창개발의 경영 상황은 현재 상당히 악화된 상태다. 인창개발의 지난해 재무제표에 따르면 총부채는 2조3866억원, 매출은 2310만원에 불과하며 영업손실은 499억원에 달한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CJ공장부지 지식산업센터 개발사업으로 당기순손실 2100억원을 내며 재무 부담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행사 인창개발은 LH가 계약금 전액을 몰수한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공사비 상승과 자금 조달 환경 악화 등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워 계약 해지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인창개발 관계자는 “계약금 규모가 워낙 큰 만큼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법적 자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LH 계약금, 피해자 위해 사용 불가능
법조계에서는 LH가 계약금을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윤성준 법률사무소 다안 변호사는 “법적으로 LH가 계약금을 공공 목적으로 써야 할 이유가 없다”며 “계약금은 LH의 자산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사전청약 당첨자들에게 쓰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는 LH가 계약금을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른 구제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LH가 계약금을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면 배임에 해당한다”며 “피해자를 위해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민간 사전청약에 대해서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국회에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는 LH의 공공택지 직접시행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민간 사전청약의 경우 공사비 인상으로 갈등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회수한 금액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며 “정부는 9·7 공급 대책으로 발표한 LH의 공공택지 직접시행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