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시대 개막 알린 전무후무한 3연패 [삼성화재배 30년사①]

이창호 시대 개막 알린 전무후무한 3연패 [삼성화재배 30년사①]

세계 바둑계 최고 명품대회 삼성화재배 30년사
이창호 시대 알린 3연패, 조훈현-조치훈 우승

기사승인 2025-11-22 06:00:08 업데이트 2025-11-24 09:33:58
이창호 9단(오른쪽)이 1999년 제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에서 중국 바둑 일인자 마샤오춘 9단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 9단은 삼성화재배 3년 연속 우승을 달성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일인자 반열에 올랐다. 한국기원 제공

세계 바둑 역사상 30회를 맞은 메이저 대회는 단 2개에 불과하다. 1996년 함께 창설된 삼성화재배와 LG배 주인공인데, 특히 삼성화재배는 더욱 각별하다. 이른바 ‘사석룰’로 촉발된 ‘커제 사태’ 이후 중국 선수단 불참으로 반쪽 대회가 된 LG배와 달리, 삼성화재배는 30주년을 맞은 올해 제주도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바둑계 최고 명품 대회로 꼽히는 삼성화재배의 30년 역사와 숱한 명승부를 복기해본다.

제1회 삼성화재배는 우승 상금 40만 달러(현재 기준, 한화 약 5억9000만원)를 걸고 열렸다. 공교롭게도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3회 응씨배와 같은 시기에 결승이 열렸고, 심지어 결승전을 펼치는 기사가 같았다. 1966년생 동갑내기 유창혁 9단과 요다 노리모토 9단이었다. 유창혁 9단은 ‘일지매’라는 별명으로 바둑 팬들에게 익숙했고, 결승전 당시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나온 요다 노리모토 9단은 ‘열도의 사무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자존심을 건 한·일전은 일본 요다 9단의 승리로 끝났다.

일본 기사 중 세계 대회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펼친 요다 노리모토 9단은 이 대회에서 ‘한국 기사 킬러’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본선 32강에서 김수장 9단을 제압한 것을 시작으로 16강에서 조훈현 9단, 8강에서 김성룡 9단을 꺾은 데 이어 결승에서 유창혁 9단에게 2-1 신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1996년 11월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펼친 제1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3번기 최종 3국에서 요다 노리모토 9단은 유창혁 9단에게 296수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백으로 1집반승을 거두고 시리즈 전적 2승1패로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 1국을 유 9단이 먼저 따내기도 했거니와, 앞서 열린 응씨배 결승에서도 3-1로 쾌승을 거두며 우승컵을 선취했던 터라 삼성화재배에서 내리 두 판을 내주면서 1-2 역전패를 당한 결과는 크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일본 바둑계에서는 그동안 한국과 중국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상황에서 등장한 요다라는 스타를 환영하며 본격적으로 ‘바둑 삼국지’ 시대의 막이 올랐다.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대국한 요다 노리모토 9단(왼쪽)이 유창혁 9단에게 첫 판을 내주고도 내리 두 판을 따내는 저력을 발휘, 2-1 역전승을 거두고 초대 삼성화재배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기원 제공
요다 노리모토 9단은 제1회 삼성화재배 우승 상금으로 40만 달러를 받았다. 한국기원 제공

이창호 시대 개막…전무후무한 메이저 세계대회 3연패

초대 삼성화재배에서 이창호 9단은 4강까지 올랐으나 유창혁 9단과 한국 내전에서 패하면서 탈락했다. 이 9단을 꺾고 결승에 올라간 유 9단이 요다 9단에게 패해 첫 대회 우승컵을 헌납하자 “이창호를 이겼으면 우승을 했어야 한다”는 바둑 팬들의 원성이 쇄도했다.

제2회 대회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창호 시대’가 열렸다. 이창호 9단은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각오로 완벽한 모습을 선보이면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전승 우승’을 달성한다. 본선 32강에서 ‘이중 허리’ 린하이펑 9단을 제압한 이 9단은 16강에서 위빈 9단, 8강에서 히코사카 나오코 9단을 차례로 돌려세우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4강 상대는 당시 중국 바둑 일인자 마샤오춘 9단이었다. 

이창호 9단과 마샤오춘 9단의 스토리는 종종 삼국지의 제갈량과 주유에 비견된다. 1995년 동양증권배와 후지쓰배를 동시에 석권하면서 세계대회 2관왕에 오른 마샤오춘 9단은 전대 일인자 녜웨이핑 9단이 이루지 못했던 세계 제패의 꿈을 이룬 기사로 대륙의 자존심이자 희망이었다.

이창호 9단은 마샤오춘 9단에게 유독 강했고, 이 대회에서도 승리하면서 결승에 올랐다. 일본 고바야시 사토루 9단과 펼친 결승 5번기는 다소 싱거웠다. 이창호 9단은 3-0 완봉승을 거두면서 2회 대회 정상에 섰다. 본선 32강부터 7연승을 내달린 우승이었다.

이어진 3회 대회 결승이 지금도 바둑 팬들의 향수를 자아내는 ‘이창호-마샤오춘 스토리’ 정점에 있는 대결이다. 결승 5번기는 ‘흑번 필승’이 이어진 끝에 이창호 9단의 3-2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창호 9단은 흑백을 정하는 돌가리기를 할 때 흑돌 1개를 올려놓는 걸로 유명했다. 마샤오춘 9단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었고, 당시 결승 1국에서도 돌가리기에서 흑을 가져간 건 마샤오춘 9단이었다.

1국부터 4국까지 흑을 쥔 쪽이 승리하는 흐름이 이어지자, 자연스레 최종 5국에서 누가 흑을 잡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들리는 소문에는 마샤오춘 9단이 백으로 돌을 쥐는 연습까지 한다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였다. 터질듯한 긴장감 속에 마주 앉은 두 기사는 돌을 가렸고, 마샤오춘 9단이 백돌을 한 움큼 쥐었을 때 이창호 9단이 매우 이례적으로 흑돌 2개를 올려놓자 마샤오춘 9단의 낯빛이 변했다. 짝수로 돌을 쥐는 연습을 했던 마샤오춘 9단은 속절없이 흑을 빼앗겼고, 이 바둑 역시 흑번필승이 이어지며 이창호 9단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중국 바둑계는 어찌 마샤오춘을 내고 이창호를 또 냈는지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흑번필승이 이어진 제3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이창호 9단(오른쪽)이 마샤오춘 9단에게 3-2 승리를 거두고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한국기원 제공
1997~1999년 제2~4회 삼성화재배에서 3년 연속 우승한 이창호 9단. 한국기원 제공

2000년대로 넘어온 제5회 대회에서는 초대 대회 당시 준우승에 머물며 아픔이 컸던 유창혁 9단이 일본 야마다 기미오 9단을 3-1로 완파하고 드디어 삼성화재배 정상에 섰다. 유 9단은 ‘메이저 세계 바둑 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되는데, 이 대회 우승이 주효했던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편 5회 대회에서는 현재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양재호 9단이 중국 뤄시허 9단, 일본 요코다 9단, 중국 저우허양 9단 등 쟁쟁한 강호를 연파하고 준결승까지 오른 점이 눈에 띈다. 양재호 9단은 4강에서 유창혁 9단에게 막혔다.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이창호 9단은 이 대회에선 16강에서 저우허양 9단에게 일격을 맞고 탈락했고, 양재호 9단이 8강에서 대신 설욕을 했다.

2001~2002년에 열린 6회와 7회 대회는 원조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이 왜 불세출의 천재 기사인지 스스로 증명한 무대였다. 1953년생인 조 9단은 지천명(50세)을 눈앞에 둔 만 48~49세 때 삼성화재배에서 2년 연속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조 9단은 2001년 제6회 대회에서 일본 류시훈 9단, 중국 마샤오춘 9단 등을 제압하며 승승장구, 이창호 9단을 꺾고 결승에 오른 중국 창하오 9단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친다. 마샤오춘 9단에 뒤를 이어 중국 바둑 일인자로 거듭난 창하오 9단과 승부가 아무래도 버겁지 않겠냐는 바둑계 예상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 조 9단은 제자 이창호 9단의 설욕을 대신하며 삼성화재배 첫 우승을 차지한다.

만 48세의 나이로 메이저 세계 타이틀을 차지하는 건 지금은 아예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지만,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는 나오기 힘든 기록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조 9단은 스스로의 기록에 다시 도전, 2002년 만 49세 나이로 다시 한번 삼성화재배 정상에 선다.

한국이 유독 약세를 보였던 제7회 삼성화재배에서 조훈현 9단은 홀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나머지 세 자리는 모두 중국의 차지로, 왕레이·후야오위·왕위후이 등 중국 신진 기수들이 약진했다. 조훈현 9단은 준결승에서 왕위후이, 결승에서 왕레이를 연거푸 제압하고 우승했다. 2000년대 이후 만 49세 세계 대회 우승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았다.

조훈현 9단(왼쪽)이 만 48세의 나이로 당시 중국 일인자였던 창하오 9단을 제압하고 제6회 삼성화재배 우승을 차지했다. 조 9단은 이듬해에도 정상에 올라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만 49세 메이저 세계 대회 제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 한국기원 제공
불세출의 천재 기사, 원조 ‘바둑 황제’ 조훈현 9단. 한국기원 제공

한국 바둑 개국 공신을 논한다면, 첫 손에 꼽히는 건 단연 ‘한국 바둑의 아버지’ 조남철 9단이다. 그 뒤를 이어 한국과 일본 바둑 정상에 군림한 인물로 바둑 팬이 가장 좋아하는 기사로는 조훈현 9단과 조치훈 9단이 있다.

1956년생으로 조훈현 9단보다 세 살 아래인 조치훈 9단은 여섯 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프로가 됐다. 이후 ‘명인’을 따낸 조치훈 9단은 당시 바둑 최강국이었던 일본을 정복하면서 국내 바둑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조치훈 9단은 ‘대삼관(大三冠, 일본 바둑에서 3대 기전으로 불리는 기성, 명인, 본인방전을 동시에 우승하는 것)’을 수차례 달성하면서 당대 최강의 바둑 기사로 늘 거론됐는데, 세계 무대에서 활약은 다소 부족했다.

삼성화재는 2003년 제8회 대회에서 주최측 ‘와일드카드’로 조치훈 9단을 낙점했다. 당시 만 47세였던 조치훈 9단에게 많은 걸 기대하진 않았을 터다. 다만 조치훈 9단을 사랑하는 수많은 국내 바둑 팬들에게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의 바둑을 선보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3년 선배인 조훈현 9단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것에 고무됐을까. 조치훈 9단은 한국의 김주호-원성진을 연파하고 8강에 오른다. 8강전 상대는 공교롭게도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조훈현 9단. 조치훈 9단은 조훈현 9단과 대결을 제압하고 준결승으로 나아갔다. 4강 대진에서 조훈현 9단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한국의 박영훈 9단, 중국 후야오위·셰허 9단으로 모두 1980년대생 기사였다.

20년 이상의 나이차가 있는 이 대결에서 조치훈 9단은 중국 후야오위 9단, 한국 박영훈 9단을 연파하고 정상에 섰다. 특히, ‘어린 왕자’ 박영훈 9단과 펼친 결승전은 조치훈 9단 바둑의 본령이 잘 발휘된 승부로 바둑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조치훈 9단은 ‘폭파 전문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비세에 몰린 국면에서 상대 진영을 파괴하는 최후의 승부수로 바둑을 단번에 뒤집었다.

만 47세의 조치훈 9단(왼쪽)이 만 18세 박영훈 9단과 29세 나이차가 나는 대결에서 승리하고 제8회 삼성화재배 정상에 올랐다. 한국기원 제공
결승전 복기에 이세돌 9단(왼쪽)이 합류한 모습. 이세돌 9단은 당시 대회 8강에서 중국 후야오위 9단에게 패해 탈락했고, 조치훈 9단(오른쪽)이 4강에서 후야오위 9단을 잡고 결승에 올라 우승까지 차지했다. 한국기원 제공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우승까지 차지하는 새 역사를 쓴 조치훈 9단. 한국기원 제공

2004년 9회 대회에서는 이창호 9단에 이어 한국은 물론 세계 바둑 일인자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이세돌 9단이 우승을 차지했다. 디펜딩 챔피언 조치훈 9단은 32강에서 유창혁 9단을 꺾고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16강에서 중국 왕시 9단에게 패했다. 조훈현 9단은 7회 대회 준결승에서 겨뤘던 왕위후이를 다시 제압하며 16강에 올랐으나 중국 구리 9단에게 패하면서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시대적 흐름을 더 이상은 거스르지 못했다.

이세돌 9단은 이 대회에서 중국 바둑계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본선 32강에서 차오다위안 9단을 제압한 이 9단은 16강에서 후야오위 9단, 8강에서 왕레이 9단을 제압하고 준결승에 올랐다. 4강에는 이세돌 9단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 기사였다. 이 9단의 준결승 상대는 필생의 라이벌 구리 9단, 반대 쪽에선 왕시-저우허양 중국 내전이 펼쳐졌다.

구리 9단과 맞선 준결승에서 승리한 이세돌 9단은 결승에서 왕시 9단을 제압하고 삼성화재배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이세돌 9단은 추후 삼성화재배에서 세 번 더 우승을 차지하면서 대회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하는데, 2004년 9회 대회가 그 역사의 시작이었다.

2005년 10회 대회에선 중국 뤄시허 9단이 결승에서 ‘석불’ 이창호 9단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중국에서도 믿을 수 없던 승리였고, 전성기가 지난 이창호 9단은 이후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에 몇 차례 더 올랐으나 더 이상 우승 트로피를 추가하지는 못했다.

이세돌 9단(왼쪽)이 중국 왕시 9단을 제압하고 2004년 제9회 삼성화재배 정상에 올랐다.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 시대’가 머지않았음을 느끼게 한 제9회 삼성화재배. 이세돌 9단이 우승 상금 2억원을 차지했다. 한국기원 제공

2편에서 계속.

불세출의 승부사 이세돌, 4회 우승 금자탑 [삼성화재배 30년사②]
중국이 인정하는 명품대회, 레전드 커제 탄생 [삼성화재배 30년사③]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