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1부 ‘이창호 시대 개막 알린 전무후무한 3연패 [삼성화재배 30년사①]’ 기사에서 초기 삼성화재배 10년 역사를 돌아봤다. 1997~1999년, 제2~4회 대회에서 이창호 9단이 달성한 ‘메이저 세계대회 3연패’ 기록은 2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조훈현 9단의 만 49세 우승, 조치훈 9단의 ‘와일드카드 출전자 우승’ 역시 그리운 ‘낭만 바둑’ 시대의 유산이라 하겠다.
삼성화재배 30년사 두 번째 기사에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세돌 시대’를 다룬다. 2006년 제11회 대회부터 2015년 제20회 대회까지의 스토리가 주축이다. 불세출(不世出)의 승부사 이세돌 9단은 2004년 제9회 대회 정상에 오르면서 삼성화재배와 인연을 맺었다.
‘쎈돌’ 이세돌 9단은 2007~2008년 제12~13회 삼성화재배를 연속 제패했다. 이세돌 9단은 2007년 제12회 대회 본선 32강에서 중국 장웨이를 제압했고, 16강에선 당시 입단 2년차였던 신예 박정환 9단에게 승리했다. 이세돌 9단은 은퇴하는 순간까지도 후대 일인자인 박정환 9단에게 상대 전적 우위를 놓치지 않았다. 박정환 9단 입장에선 삼성화재배에서의 이 만남이 ‘병아리 때 쫓기면 장닭이 돼서도 쫓긴다’는 속담처럼, 악몽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8강으로 나아간 이세돌 9단은 구리 9단과 함께 중국 바둑계를 양분하고 있던 창하오 9단과 만난다. 이세돌 9단은 ‘중국의 이창호’로 불리는 창하오 9단과도 중요한 길목에서 여러 차례 격돌했는데, 그때마다 승리를 쟁취했다. 통산 상대 전적 17승7패(70.8%) 압도적 우세도 이를 입증한다. 이 대회 전에는 일본 주최 세계대회 도요타 덴소배 결승에서 만나 승리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비씨카드배 결승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등 이세돌 9단은 중국 최강의 기사들에게 유독 강했다. 한편 창하오 9단은 직전 대회인 2006년 제11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을 2-0으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강자로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난적 창하오를 제압하고 4강으로 올라선 이세돌 9단은 준결승에서 중국 황이중, 결승에선 구리 9단을 꺾고 올라온 박영훈 9단과 한국 내전을 펼친 끝에 2-1로 승리하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박영훈 9단으로선 2003년 제8회 대회 결승에서 조치훈 9단에게 정상을 내준 이후 4년 만에 두 번째 우승 도전이 불발된 결과였다.
이세돌 9단이 연속 우승에 성공한 2008년 제13회 삼성화재배는 세계 바둑 역사의 변곡점이 된 승부로 평가된다. 이세돌 9단은 8강에서 이창호 9단에게 승리했고, 준결승에선 다시 중국 황이중을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이 9단의 상대는 당시 떠오르던 대륙의 새로운 일인자 쿵제 9단이었다.
쿵제 9단은 녜웨이핑-마샤오춘-창하오-구리-커제로 이어지는 중국 바둑 일인자 계보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대권을 위협했던 강자다. 이 당시 쿵제는 구리와 함께 가장 강력한 중국 바둑 쌍두마차였는데, 이미 세계 일인자로 발돋움한 이세돌의 적수는 아니었다. 두 기사의 결승에서 이세돌 9단은 2-0 완승을 거두고 2년 연속 우승, 통산 3회 우승을 달성한다.
2004년 첫 우승…이후 2012년까지 삼성화재배 통산 4회 우승 차지한 ‘절대자’ 이세돌
이세돌 9단의 대회 통산 네 번째 우승은 2012년 제17회 대회에서 완성됐다. 드디어 성사된 ‘필생의 라이벌’ 구리 9단과의 결승이었다.
당시 중국 바둑계는 창하오-저우허양-왕레이 등이 주축인 ‘육소룡(六小龍)’, 구리-쿵제-후야오위-왕시 등으로 구성된 ‘십소호(十小虎)’에 이어 천야오예 9단이 주축인 ‘소표(小豹)’ 세대로 순조롭게 세대교체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세돌 9단은 이 대회 16강에서 리친청 9단, 8강에선 천야오예 9단을 꺾었고, 준결승에선 최철한 9단을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중국 구리 9단은 안국현-강동윤-박정환 등 한국 기사들을 연파하고 결승에 오르면서 세기의 대결 막이 올랐다.
이세돌과 구리의 결승전은 이세돌의 2-1 승리로 끝난다. 이세돌 9단은 1국에서 306수까지 가는 혈투 끝에 백으로 ‘반집’을 남겼다. 2국에선 174수 만에 불계패를 당한 이 9단은 최종 3국에서 다시 270수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번에는 흑으로 반집을 남기면서 도합 1집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세계 바둑 대회 결승전 역사상 반집 두 번, 총 1집으로 승부가 갈린 대결은 이때가 유일했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제13회 대회에서 이세돌 9단에게 셧아웃을 당했던 쿵제 9단은 한 해 뒤인 2009년 제14회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다. 당시 대회 본선 대진표를 보면 재밌는 점이 눈에 띈다. 전기 대회 우승-준우승는 차기 대회 시드를 받는데, 본선 멤버에 ‘디펜딩 챔피언’ 이세돌 9단의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진성 바둑 팬’이라면 왜 그랬는지 금세 떠올랐을 수도 있다. 당시 이세돌 9단은 ‘휴직’ 상태였다. 2009년 6월, 돌연 휴직계를 제출한 이세돌 9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심경을 밝혔다. 여기에 얽힌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은 추후 다른 지면을 통해 조명하기로 하고, ‘호랑이가 없는 굴에는 여우가 왕’이라는 속담처럼 이세돌이 잠시 자리를 비운 바둑계에선 쿵제가 최강이었다. 쿵제 9단은 2009~2010년 삼성화재배와 LG배, 후지쓰배를 연거푸 제패하면서 메이저 세계대회 3관왕에 오른다. 다만 ‘천적’ 이세돌 9단이 복직한 이후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10년 제15회 삼성화재배 결승은 중국 구리 9단과 한국의 허영호 9단이 격돌했다. 당시 4강엔 한국이 강세를 보였지만, 최종 승자는 구리 9단이었다. 구리는 준결승에서 김지석, 결승에선 허영호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뒀다. 준우승을 차지한 허영호 9단은 4강에서 박정환 9단을 꺾고 결승에 올라 세계대회 첫 우승에 도전했으나 구리의 벽에 막혔다.
2011년 제16회 삼성화재배 역시 결승의 한 자리는 구리 9단의 차지였다. 구리 9단은 본선 16강에서 이창호 9단, 8강 김지석 9단, 4강 나현 9단을 차례로 꺾고 2년 연속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상을 밟지 못했다. ‘원펀치’ 원성진 9단이 군입대를 앞두고 심기일전, 결승에서 구리를 2-1로 무너뜨렸다. 앞서 언급했던 2012년 이세돌 9단과 명승부를 펼친 제17회 대회까지, 구리 9단은 3년 연속 결승에 올라 우승 1회, 준우승 2회의 기록을 남겼다.
조훈현 이후 한국 바둑계는 ‘만 30세’ 이후에 메이저 세계대회를 제패한 기사가 없다. 1975년생인 이창호 9단 역시 만 30세였던 2005년 제10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중국 뤄시허 9단에게 1-2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고, 이듬해 2006년 제11회 대회에서도 창하오 9단에게 0-2로 졌다.
이와 같은 일종의 ‘징크스’는 이세돌 9단에게도 여지없이 이어졌다. 1983년생인 이세돌 9단은 만 30세였던 2013년 제18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중국 신성 탕웨이싱 9단에게 패퇴하면서 ‘단일 메이저 대회 5회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이세돌 9단은 이 대회에서 천야오예-추쥔-우광야 등 중국 신예 강자들을 연파하고 결승에 올랐으나, 시간이 흐른 뒤에 ‘삼성화재배의 사나이’로 불리게 되는 탕웨이싱과 승부를 내주고 말았다. 2013년 첫 삼성화재배 결승 무대에서 우승까지 일궈낸 탕웨이싱 9단은 이후 세 번 더 결승에 올라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추가하게 된다.
2편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고의 명승부는 2014년 제19회 삼성화재배 결승, 김지석과 탕웨이싱의 대결이다. 2013년은 ‘중국 바둑 천하통일의 해’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동안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는 한국 바둑 일인자 계보에 눌려 힘을 쓰지 못했던 중국 바둑은 2013년에 열린 6개의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에서 모두 우승했다. 이창호 9단 등장 이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지 못하면서 중국 내에서도 정상에서 밀려났던 마샤오춘 9단은 “결국 한국을 넘어섰다. 중국이 정말 기쁘고 축하해야 할 2013년”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이 단 한 명의 절대자가 군림하는 방식으로 세계 바둑계를 평정해왔다면, 중국은 앞서 언급한 ‘육소룡-십소호’에 이은 ‘소표’ 세대 기사들이 대거 전면에 등장하면서 나타난 성과였다. 2013년 중국 바둑의 성과를 잠시 살펴보면, 백령배에서 저우루이양 9단이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LG배에서 스웨 9단, ‘바둑 올림픽’ 응씨배에서 판팅위 9단, 춘란배는 천야오예 9단, 몽백합배에서 미위팅 9단이 정상에 올랐다. 연말에 열린 삼성화재배에서 탕웨이싱 9단(對 이세돌 9단)까지 여섯 명의 기사가 여섯 개의 메이저 대회를 각각 우승하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두려울 게 없던 중국 바둑에 찬물을 끼얹은 기사가 바로 김지석 9단이었다. 1989년생인 김지석 9단은 일찍이 이세돌 9단이 ‘내 뒤를 잇는 후계자’라고 극찬했던 기사였다. 김지석 9단은 ‘삼성화재배에서 더욱 강해진다’는 평가를 받는 탕웨이싱 9단과 결승을 2-0으로 제압했다. 김 9단은 “프로 입단 후 가장 큰 목표였던 세계대회 우승을 이뤄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고, 바둑계에선 ‘황태자’라는 별명도 생겼다.
한편 2015년 제20회 삼성화재배에선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 바둑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 커제 9단이 준결승에서 이세돌 9단, 결승에서 스웨 9단을 연파하고 정상에 선다. 이 대회 우승 이후 중국은 삼성화재배에서 6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는데, 그 여섯 번 중에 커제 9단이 시상식 무대 꼭대기에 오른 횟수가 무려 4번에 달한다. 3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열린 ‘커제 시대’와 중국 바둑의 약진을 다룬다.
3편에서 계속.
이창호 시대 개막 알린 전무후무한 3연패 [삼성화재배 30년사①]
중국이 인정하는 명품대회, 레전드 커제 탄생 [삼성화재배 30년사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