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려진 공포가 만든 ‘혐중’… 청년 불안 먹고 자라는 혐오 [쿠키청년기자단]

부풀려진 공포가 만든 ‘혐중’… 청년 불안 먹고 자라는 혐오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5-11-23 15:40:11 업데이트 2025-11-23 17:54:49
지난달 10월25일 서울 동대문 일대에서 보수 성향의 단체가 중국인 무비자 입국에 반대하며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청년시선’ 제공 

“차이나 아웃! 반(反)국가 세력을 척결하라!”


지난달 서울 명동 일대가 청년들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혐중’ 정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제도 시행 이후 서울 도심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온라인에서는 혐오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대학생 김상훈씨(25·가명)는 “중국인이 대거 들어오면 범죄가 늘고 한국 사회가 위험해질 것”이라며 “단순한 감정적 반감이 아니라 안전을 지키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인 유입 증가는 곧 치안·일자리·복지 악화’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국가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수치로 나타났다. 지난해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실시한 ‘2024 한국인의 동아시아 인식 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성인의 63.8%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특히 20대(70.6%)와 30대(73.2%)는 다른 연령층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중국에 대한 인식이 가장 크게 악화됐던 2021년(73.8%)과도 큰 차이가 없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현재 나타나는 청년층의 움직임을 ‘반중’보다 혐중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그는 “반중은 특정 정책·체제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지만, 혐중은 중국인 전체에 대한 감정적 반감을 말한다”며 “최근 청년층은 중국 정부보다 중국인의 ‘국민성’을 문제 삼는 경향이 강하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전 세대적 반중 정서는 예전과 대동소이하지만, 20~30대만 놓고 보면 악화 폭이 크다”며 “기성세대가 중국을 ‘협력 대상’으로 인식해 온 반면, 젊은 세대는 이미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경쟁자이자 잠재적 위협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 관련 가짜뉴스 게시물. 실제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지만,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며 공포와 불안을 키웠다. 인스타그램 캡처  

가짜뉴스·음모론, 혐오에 기름 부어


청년층의 불안을 자극한 것은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확산한 각종 가짜뉴스였다. ‘중국인 3000만명 입국’, ‘인신매매 조직 활동’ 등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이 SNS에서 급속히 퍼졌다. 지난 9월 발생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를 중국인 불법 입국과 연관 짓는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무비자 입국 시행 이후에는 “늦은 밤길 조심하라”, “중국인의 납치·인신매매 주의” 같은 경고성 게시물이 수십만 회 조회되며 공포가 증폭됐다. 이를 본 일부 네티즌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며 불신을 표했고, SNS 타임라인에는 ‘불안을 공유하라’는 식의 재게시가 유행처럼 번졌다.

윤영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대부분 근거가 거의 없는 음모론에 가깝다”고 밝혔다. 다만 뉴미디어 환경에서 혐중 콘텐츠가 ‘상업적 활용’되는 현상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윤 소장은 “분노와 혐오는 소비를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감정”이라며 “뉴미디어에 익숙한 청년층은 그 파급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원 영통구의 한 사거리에 걸려있는 혐중 현수막. ‘유괴’, ‘납치’, ‘장기적출’ 등 자극적인 표현이 담겨있다. 사진=차서경 쿠키청년기자 

정치권도 혐오 자극… 사회 갈등만 심화


정치권에서도 혐중 정서를 자극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국민의힘은 이른바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을 추진하며 의료·선거·부동산에서 중국인의 특혜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청년층의 불안과 반감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일부 정치세력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혐중 정서를 이용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국익을 해치는 파시즘적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일본 극우 정치세력이 재일교포를 공격하며 지지를 모은 방식과 유사하다”며 극단주의 확산을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혐중 정서를 일시적 감정이 아닌 구조적 사회 문제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희교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혐중은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병리적 현상”이라며 “교육과 제도 차원에서 인종주의적 혐오에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서경 쿠키청년기자
tjrud7975@naver.com
차서경 쿠키청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