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의 오르탕스는 미완성인가?
세잔의 <온실에 있는 세잔 부인> 은 단순한 초상화를 넘어선다. 이 그림은 아내 오르탕스 피케(Hortense Fiquet, 1850~1922)를 40세의 모습으로 담아낸 것으로, 그의 초상화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매혹은 전통적인 미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세잔은 오르탕스의 내면이나 표정을 탐구하기보다는, 자신의 감각적 지각을 통해 익숙한 형태들을 재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턱 선, 가름마, 옷의 주름 같은 디테일은 그가 선호한 시각적 요소였고, 이는 오르탕스가 세잔의 작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 묵묵히 모델로 앉아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랜 시간 관찰하여 여러 번 선을 그려서 선이 하나로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림 속 온실은 분산된 빛과 푸른 식물, 꽃들로 가득하다. 대각선으로 구성된 공간은 깊이감을 더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몰입을 유도한다. 세잔은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초상화의 틀을 벗어나, 시대적 배경과 모델의 외형을 조화롭게 엮어낸다.
이 그림은 세잔의 미적 감각이 어떻게 현실을 재해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온실에 있는 세잔 부인> 은 인물보다 공간이 먼저 보이는 초상화이며, 그 안에서 오르탕스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존재한다. <빨간 안락 의자에 앉은 세잔 부인>보다 14년이 흘렀지만, 세월을 거꾸로 흐른 듯 더 젊은 모습이다.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의 아내 마르트 드 멜리니(Marthe de Meligny)처럼 말이다. 보보나르는 사진을 참조하여 기억으로 작업하며, 꿈 같은 느낌을 주는 자신의 아내를 384점이나 그렸다. 보나르는 20세기 화가 중 가장 독특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전형적인 작품은 햇살이 비치는 정원이나 실내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거나,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젊은 아내가 욕조에 누워 있는 모습이다.
보나르의 테라스: 기억과 상상의 공간
19세기 말 보나르는 고갱의 영향을 받아 반인상주의 집단인 나비(Les Nabis)파를 주도적으로 결성했다. ‘나비’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뜻한다. 1920년대, 피에르 보나르는 센 강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테라스를 그렸다. 그곳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었다. 버논넷(Vernonnet)의 작은 집, ‘카라반’이라 불린 그 공간은 기억과 상상이 교차하는 무대였다.
보나르는 눈앞의 풍경보다 마음속의 장면을 그렸다. 테라스의 세 인물은 현대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들의 자세와 분위기는 고대 신화에서 온 듯하다. 특히 오른쪽 여성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조각 ‘죽어가는 니오비드(Dying Niobid)’를 닮았다. 그녀는 고통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품은 존재로, 보나르의 그림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온실 속의 세잔 부인> 그 너머
세잔은 모델에게 인내를 요구했다. 그의 아틀리에서 네 개의 불안정한 상자 위에 놓인 의자에 모델이 앉았다. 모델이 불안해하자 그는 말했다. “쓰러질 위험은 없어요. 움직이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게 아닙니다.”
결국 모델은 깔판 위로 쓰러졌고, 세잔은 다가가 말했다. “움직이면 포즈가 흐트러져요. 사과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는 초상화에서도 정물처럼 부동을 원했다. 오르탕스에게도, 다른 모델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1890년대, 큰 작품이 100프랑에 팔리던 그에게 처음으로 기회를 준 이는 화상 앙부르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 1866~1939)였다. 볼라르는 세잔의 고집을 이해했고, 그를 세상에 소개했다. 세잔의 아틀리에에 있는 그림 전부를 가져간 볼라르의 전시회에는 <온실에 있는 세잔 부인>을 포함한 50점의 작품이 걸렸다.
세잔은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세상을 그렸다. 사과처럼, 움직이지 않고.
형태로 말하다: 구조와 감정의 경계
1860년대,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은 자화상을 시작하며, 자신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냈다. 그는 모자의 형태를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덩어리로 묘사하며, 배경 요소인 의자는 거의 생략했다. 얼굴은 광대뼈와 이마를 중심으로 평면적으로 처리되어, 입체감보다는 구조적 분할이 강조된다. 눈과 입은 세밀하게 표현되지 않아, 관람자와의 감정적 연결을 차단하고 인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조성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세잔이 단순한 인물 묘사를 넘어,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던 실험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림은 세잔의 구원이었다
“그림은 결국 자신의 기질의 표현이며, 타협 없이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근본이다.” 세잔은 그렇게 말했고, 그 믿음 속에서 예술의 더 깊은 감각을 파악하려 했다. 그 노력은 그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
세잔은 죽음 앞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예술은 고독했고, 집념이었으며, 형벌이자 구원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사과였다, 나는 죽어 있는 정물이다
나는 그의 그림 속에서 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는 죽어 있다. 그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나를 측정했고, 나를 배치했고, 나를 조명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의 시선이 원하는 각도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가 원하는 만큼만 존재했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고 말한다. “냉담하다”, “지쳐 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의 붓이 멈출 때까지. 오르탕스는 창백하고 참을성이 많았고, 키가 컸으며, 금발이었다. 오르탕스는 어딘지 공허하고 불가해하다. 역사가들은 그 표정을 성격이라 말했지만, 세잔은 말하지 않고 단지 그렸을 뿐이다.
나는 그의 정물이었다. 사과처럼, 병처럼, 테이블 위의 천처럼.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의 앞에 앉은 것은 1890년대 중반이다.
불가해한 여인, 불확실한 삶
세잔은 편지를 자주 썼다. 친구에게, 아들에게, 누이에게. 하지만 오르탕스에게는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 세잔은 “내 아내는 스위스와 레모네이드만 좋아한다”며 오르탕스에게는 상속권을 박탈했다. 오르탕스는 아들이 나눠준 합의금을 도박으로 탕진하였다. 불가해한 여인 오르탕스는 세잔의 그림 속에만 존재했다.
오르탕스는 파리와 마르세유에서 아들과 함께 살았다. 엑스의 집은 가정부와 누이 마리가 돌보았다. 세잔과 오르탕스는 부부였지만, 작업실에서만 함께 있었고, 불확실했다.
폴 세잔, <세잔 아들의 초상, 폴>, 1885~1890, 캔버스에 유채, 64.5x54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세잔, 아들을 바라보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세잔은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두 사람에게 포옹을 보낸다. 너와 마마에게 진심으로 키스한다.”
세잔의 아들 폴은 18살이고, 그는 여러 번 아들을 그렸다.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 있는 초상 속 폴은 보울러 해트를 쓰고, 약간 곁눈질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 시선은 아버지를 향한 것일까, 아니면 세상을 향한 것일까?
얼룩진 배경, 선명한 사랑
세잔은 아들을 그릴 때, 색으로 감정을 말한다. 복숭아색 얼굴엔 짙은 청색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재킷은 갖가지 파란색과 회색, 녹색의 점들로 얼룩진다. 배경의 다이아몬드 무늬 벽과 라펠 칼라가 만들어내는 V자형 구도는 그림에 리듬을 더하고, 오른쪽 병풍은 인물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는 그림 가격을 흥정하지 못했고, 손님을 응대하지도 못했다. 그런 세잔을 대신해 아들은 세상과 소통했다. 틈날 때마다 세잔은 에밀 베르나르에게 아들을 칭찬했고, 아들과 함께 있을 땐 세잔도 밝고 수다스러웠다.
그림 속 얼룩진 색채는, 어쩌면 세잔이 아들에게 보낸 조용한 사랑의 흔적이다.
사진 오른쪽: 후안 그리스(스페인, 1887–1927), <세잔을 본뜬 세잔 부인의 초상>, 보리외(보리울레스로슈), 1916년. 흰색 종이에 흑연, 21 x 16.5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세잔, 고갱을 거부하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어.” 세잔은 고갱을 향해 단호했다. 그는 색조의 미묘한 변화, ‘그라다시옹(gradation)’을 평생 탐구해온 화가였다. 입체감 없는 평면적 색면 구성, 단순화된 형태. 세잔은 고갱의 그림을 “중국식 그림”이라며 일축했다.
그가 말한 ‘에피날식(epinard 式)’ 그림은, 고갱 특유의 장식적이고 단조로운 양식을 가리킨다. 세잔에게 그것은 회화의 본질을 외면한 결과였다. 그는 결코 색의 단계적 전이를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고갱을 세잔의 계승자라 부르는 시선은 어쩌면 과장된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빛을 좇았다. 세잔에게 회화는 감각의 진실을 향한 고집스러운 탐색이었다. 그 고집은, 때로는 동시대의 화가조차 넘지 못할 벽이 되었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