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대를 기록하면서 금융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고환율 장기화가 은행의 핵심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갉아먹는 것은 물론, 금융지주사들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직전 거래일 종가 대비 1.5원 오른 1477.1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4월9일(1484.1원) 이후 약 7개월 15일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은 21일에 이어 2거래일 연속 1470원대에 마감하고 있다.
금융지주는 급등하는 환율에 민감하다. 환율 상승이 금융지주의 자본 건전성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보유한 외화 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불어나 위험가중자산(RWA)이 확대된다. RWA란 은행이 빌려줬거나 투자한 돈을 위험도에 따라 가중치를 적용해 계산한 수치다. RWA가 늘면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낮아진다. CET1 비율은 금융사의 손실 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CET1 비율이 높을수록 손실 흡수 능력이 좋다는 뜻이다.
통상 금융권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CET1 비율이 0.01~0.03%포인트(p) 하락할 것으로 추산한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보통주자본(CET1)은 3분기 말 기준 12.34~13.83%로 집계됐다. KB금융 13.83%, 신한금융 13.56%, 하나금융 13.30%, 우리금융 12.92%, NH농협금융 12.34% 순이다.
환율 변동성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금융지주들은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한 밸류업 전략의 일환으로 CET1 비율을 13%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에 CET1 비율을 12%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안정적인 CET1 비율은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정책의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환율 급등으로 CET1 비율이 떨어질 경우 자본 확충이나 이익 유보 등 보수적 대응이 불가피해, 계획한 밸류업 추진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의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보이는 BIS 비율(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안정적일지 몰라도, 고환율이 지속되면 해외 투자 자산에서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환율 1500원 돌파는 과거 IMF나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위험을 시사한다”며 “은행들이 원화 자본금은 충분할지 몰라도, 해외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등 해외 익스포저에서 달러 베이스의 추가 증거금 요구(마진콜)가 발생할 경우 현금 흐름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역시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 치솟으면 장외 파생상품 계약 등에서 담보 추가 요구가 들어올 수 있어 금융기관이 일부 손실을 입거나 금융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관건은 환율 흐름이다. 핵심 변수로는 ‘수급 불균형’이 지목된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현재의 환율 상승에 대해 “해외 투자가 늘면서 달러를 사려는 매수 호가는 촘촘한 반면, 팔려는 매도 호가는 텅 비어있는 수급 비대칭 현상이 심화됐다”며 “역외 투기 세력이 이 틈을 타 환율 상승 쪽에 베팅하면서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짚었다.
1600원 선이 뚫릴 가능성은 낮게 봤다. 민 연구원은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종료로 미 재무부가 쌓아둔 약 9500억 달러의 현금을 풀기 시작할 것”이라며 “12월 연준의 양적 긴축 종료와 맞물려 말라있던 달러 유동성이 공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러 유동성이 풀려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살아나면 원화 가치도 안정을 찾을 것이란 게 민 연구원의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고환율 흐름이 지속될 경우, 외환 당국이 국민연금을 활용한 환헤지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달러표시 해외자산을 일부 매도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달러 공급을 늘리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위해 마련하는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매수하는 대신 한국은행과의 외환 스와프를 재가동해, 달러 수요를 줄이는 방안도 언급된다. 실제로 이날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국민연금공단 등 관계 당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4자 협의체 회의를 가졌다.
다만 섣부른 개입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효섭 실장은 “지금 수준이 과연 ‘오버슈팅(일시적 과열)’인지, 아니면 펀더멘털 악화를 반영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국민연금이 지금 섣불리 환헤지에 나섰다가 환율이 떨어지지 않으면 국민 노후 자금으로 손실을 볼 수 있어 1500원 돌파 시점 등 타이밍을 신중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