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약환급금준비금 부담이 빠르게 커지면서 멈춰섰던 보험사 배당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당국이 연내 제도 개선을 목표로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선 가운데, 업계는 새 기준 도입 여부에 따라 내년 배당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고 있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연내 해약환급금준비금 제도 개선을 목표로 여러 가지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이달 초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간담회에서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기준의 합리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해약환급금을 안정적으로 마련해 두기 위해 미리 적립하는 법정 준비금이다.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했을 때 해약환급금보다 부채가 적은 경우, 그 차액만큼을 추가로 쌓도록 한 구조다. IFRS17 도입 이후 회계상 이익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이익의 과도한 유출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마련됐다.
문제는 준비금 규모가 가파르게 불면서 보험사들의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해약환급금준비금 누적액은 2022년 말 23조7000억원에서 2023년 말 32조2000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 6월 말에는 38조5000억원까지 확대됐다. 이 추세라면 올해 누적 규모가 5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화생명의 올해 준비금 잠정치도 5조6870억원으로, 2023년 말(2조5050억원)과 2024년 말(3조6310억원)을 크게 뛰어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준비금 부담이 커지면서 보험사들의 배당 여력은 사실상 급격히 위축됐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23년 만에 배당을 중단했고, 한화생명 역시 배당을 하지 못했다. 2023년 5년 만에 배당을 재개했던 한화손보도 지난해 다시 배당을 멈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준비금은 장래 환급에 대비해 묶어두는 자금이어서 투자나 신상품 개발에는 사실상 활용이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이익이 쌓여도 자본운용 효율이 떨어지고 주주환원 여력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인세 절감 효과 보다 배당 제약이 훨씬 더 큰 이슈여서 제도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세법상 손금으로 인정돼 과세소득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제도 개선 되면 배당”…“이연법인세부채 반영도 검토해야”
보험사들은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화생명은 최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업계가 해약환급금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꾸준히 건의해 왔고, 금융당국도 합리화 방안을 검토 중으로 알고 있다”며 “제도가 긍정적으로 개선될 경우 2025년 배당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업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관련 기준을 손질해 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제3차 보험개혁회의에서 경과조치 이전 K-ICS 비율이 2024년 말 기준 200%를 넘는 보험사를 대상으로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비율을 80%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적용 대상이 약 6곳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당국은 올 4월 열린 제7차 보험개혁회의에서 제도를 한 차례 더 완화했다. K-ICS 170~190% 구간의 보험사에도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산출액의 80%만 적립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 기준은 단계적으로 확대돼 2029년에는 K-ICS 130%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질 예정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적립 비율 조정만으로는 실질적인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미 쌓여 있는 준비금 부담이 상당한 데다, 향후 신규 계약 증가로 추가 적립 부담까지 더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이연법인세부채(미래에 납부할 법인세)도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적립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쌓으면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돼 과세소득이 줄어들지만, 동시에 회계 기준상으로는 미래에 납부할 세금을 미리 반영한 이연법인세부채가 발생한다. 이 부채 역시 향후 외부로 유출될 성격의 금액으로, 배당이나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없는 ‘갇힌 돈’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해약환급금준비금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는 설명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연법인세부채를 반영하면 제도의 본래 취지인 ‘해약환급금만큼의 사외유출 방지’는 유지하면서도, 이전 회계제도보다 배당가능이익이 과도하게 감소하는 문제는 완화할 수 있다”며 “보험계약자 보호와 상법상의 기준에도 부합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