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나이트는 아랍어로 ‘알프 라이라 와 라이라’라고 부르는 중동 지역의 설화집이다. 즉 천일하고도 하루의 밤이라는 뜻으로 약 250편의 이야기가 1,001일 밤 동안 계속되었기에 붙은 제목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천일야화'라고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40명의 도둑 이야기인 '알리바바와 40명의 도둑', 소년 신드바드의 모험을 그린 '신드바드의 일곱 항해', 왕자와 공조의 우애와 용기로 부모를 찾게 되는 '말하는 새'가 있다.
또한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김은숙 작가의 '다 이루어질지니'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라딘과 요술 램프'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라딘과 요술 램프'는 필자의 어린 시절 특별한 행운을 기대하게 하는 꿈과 희망의 동화였다.
가난한 소년 알라딘이 사악한 마법사의 부탁으로 램프를 가져오지만 건네주지 않자, 마법사는 동굴을 봉인하고 떠난다. 알라딘은 우연히 램프를 문질렀고, 요정 지니가 나타나 알라딘의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알라딘은 부자가 되었고,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였으나 사악한 마법사가 나타나 램프를 빼앗고 왕국도 차지한다. 알라딘은 지혜를 발휘해 공주와 왕국을 모두 되찾는다. 램프의 요정 지니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위기와 좌절 속에서도 자신의 지혜와 용기로 고난을 극복해 가는 여정은 어린 나에게 큰 감명으로 다가왔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감정이 결여된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갖고 있는 가영이가 지니를 만나 세 가지 소원을 이루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세평은 뒤로하고,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드라마 속 지니는 “모든 인간은 결국 타락한다”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인간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것이다.
드라마 회차가 거듭될수록 “모든 인간은 결국 타락한다”라는 지니의 신념이 깨지길 바랐다. 물론 예상하는 것처럼, 인간은 재물 앞에서 번번이 타락했지만, 주인공 가영의 가장 큰 결핍인 “감정을 느끼게 해 줘”라는 마지막 소원에 대전제는 깨져버리고 만다.
가영이 선택한 것은 가장 ‘인간다운 감정, 사랑’이었다.
오직 사랑만이 “모든 인간은 결국 타락한다”라는 대전제를 깰 수 있는 한 방향이었다. 많은 에피소드에서 ‘소원’을 매개체로 정령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교감하며 상처를 치유해 가는 모습은 꽤 감동적이었다.
모든 사람은 결핍이 있다.
결핍이 있어야 채울 것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결핍을 아는 것은 인간다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역설의 법칙을 아는가?
논리적 모순이 깊은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오로지 결핍을 아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역설적 감정.
그 속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라딘과 요술 램프'에서 알라딘은 램프의 요정 지니를 통해 행운을 얻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과 용기였다.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가영과 지니는 가족과 이웃, 친구와의 관계를 자신의 노력과 용기로 지켜낸다. 타인의 도움으로 다 이루어질 것처럼 하였으나 본인의 결핍을 인정하고 그 결핍을 사랑과 우정, 용기로 가득 채운다. 참으로 아이러니 아닌가!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삶에서 겪는 수없이 많은 상처와 고난, 그로 인해 생긴 결핍을 사랑과 우정, 용기로 채워간다면 그 또한 행운 아닐까?
재물이 아닌, 우연 없는 행운도 아닌, 역설을 이해하는 인간다움으로, 결핍은 결국 든든함이란 것을 알아간다면 세상은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램프의 요정 지니는 우리의 인간성을 찾게 하는 동기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고독을 알고, 고단한 하루의 편안함을 느끼며, 혼자지만 외로움도 즐겁다는 것을, 공허함은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거름이 되며, 결핍이 있어야 든든한 나로 바로 설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이것이 삶의 역설임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