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대미투자특별법 발의 ‘속도’…野 “비준 먼저” 공방 불씨 남아

與, 대미투자특별법 발의 ‘속도’…野 “비준 먼저” 공방 불씨 남아

기사승인 2025-11-26 06:05:03 업데이트 2025-11-26 10:08:03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상 과정에서 작성된 ‘팩트시트’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순 양해각서(MOU)라는 전제 아래 ‘대미투자특별법’을 발의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헌법 60조에 따라 국회 비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향후 입법 과정에서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대미투자특별법 26일 발의…관세 소급 적용 근거 마련”

26일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APEC 성과확산 및 한미관세협상 후속지원위원회’ 첫 회의에서 “APEC 성공을 넘어 이제 성과를 키울 시간”이라며 “관세 소급 적용을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당정이 ‘원팀’으로 움직이면 후속 성과도 분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정은 정부 입법 절차에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해, 이날 김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하는 방식으로 특별법을 제출하기로 했다. 현재 자동차 관세는 25%지만,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되면 해당 월 1일 기준으로 관세를 15%로 소급해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대미투자특별법에는 미국 내 약 2000억달러 규모의 직접 투자를 위한 기금 조성 방안과 운영 방식이 담길 예정이다. 법안의 기본 틀은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당시 양측이 체결한 ‘한미 전략적 투자 MOU’를 토대로 구성된다.

민주당은 특별법 외에도 각 의원이 제출한 추가 법안을 병합해 심사하고, 국회 내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 입법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여야 간 후속 조치에 대한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어, 최종 처리 시점은 관련 상임위원회 논의 결과에 따라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쟁점은 ‘조약 해당 여부’…여야, 헌법 60조 적용 놓고 이견 평행선

양측의 핵심 쟁점은 이번 MOU가 헌법 60조의 적용 대상인 ‘조약’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헌법 60조 1항은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국민의힘은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문서 명칭이 조약이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국가 재정에 중대한 부담이 발생한다면 국회 비준은 필수라는 것이다. 특히 1999년 헌법재판소가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 내용과 재정적 영향으로 비준 필요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점을 근거로 들며, 이번 MOU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구속력 없는 MOU에 기반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더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내용상 국민과 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지우는 만큼 국회 비준 절차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1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당정은 미국과 체결한 대미 투자 MOU가 조약이 아닌 행정적 합의에 불과해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MOU 자체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만큼 비준 절차를 진행할 경우, 오히려 한국만 국제법상 의무를 떠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원리금 조정, 수익 배분, 환율 변동에 따른 투자 규모 조정 등에서 필요한 협상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조약 수준의 비준을 거치면 오히려 우리 발목만 묶게 된다”며 “유연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같은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전문가도 분분…트럼프 2기 이후 고려한 퇴로 다각화 필요 의견도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헌법 60조 적용 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특히 재정 부담을 기준으로 비준 필요성을 강조하는 견해와, MOU의 비구속성·정책 유연성을 근거로 비준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견해가 뚜렷하게 대비되는 상황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 분석보고서에서 “관세 협상 결과에 따른 대미 투자 규모는 향후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양국 간 양해각서 또는 협정 체결 시 관련 법령에 따라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쳐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법학계에서도 실질적 조약 성격 여부가 핵심 판단 기준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합의문에 어떤 명칭을 붙였는지가 아니라, 그 실질적 내용이 조약의 성격을 갖는지가 판단 기준”이라며 “새로운 권리·의무를 창출하는지 여부가 국회 동의 필요성을 가르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국제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퇴로를 다각화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팩트시트에는 이미 양국이 국제법상 권리와 의무가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며 특히 2028년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정책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 투자 속도를 상황에 맞게 조절할 여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현실적 변수들을 감안할 때, 국회 비준을 추진하기보다는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비준 미실시가 더 실효적 방안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혜진 기자
hjk@kukinews.com
권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