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없는 약국’…성분명처방, 해법될 수 있을까

‘약 없는 약국’…성분명처방, 해법될 수 있을까

약국 뺑뺑이, 국가필수의약품 부족사태에 성분명 처방 도입론 부상
“정부가 입법만 기다리면 안 돼” 지적도

기사승인 2025-11-26 11:00:09
쿠키뉴스 자료사진. 한지영 디자이너

최근 독감과 감기 유행이 이어지면서 일선 약국에서 소아용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 현탁액을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로 인해 필요한 약을 찾아 여러 약국을 전전하는 이른바 ‘약국 뺑뺑이’ 현상도 나타나며, 의약품 품절 문제의 대안으로 성분명 처방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료의약품 공급 불안정과 수요 증가가 겹치면서 어린이용 의약품을 포함한 국가필수의약품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 반복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9월 국가필수의약품에 한해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해당 제도는 곧 의사단체와 약사단체 간 핵심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성분명 처방은 처방전에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기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타이레놀 500mg’ 대신 ‘아세트아미노펜 500mg’으로 표기하는 형태다. 국회는 동일 성분 의약품을 활용하는 방법이 공급 부족 사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서 같은 성분과 제형이지만 상품명이 다른 제품을 써서 사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며 성분명 처방 유용론이 힘을 얻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성분은 같지만 상품명이 다른 의약품을 활용하면 의약품 품절을 줄일 수 있었다. 김윤 의원실 제공


의약단체의 의견은 팽팽히 맞선다. 약사단체는 의약품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성분명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같은 성분의 약이 있어도 상품명이 다르면 조제가 불가하고 약이 창고에 남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을 도입해야 환자에게 안정적으로 치료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제약사가 전년도 사용량을 기준으로 생산량을 결정하다 보니 올해처럼 독감·감기 환자 수가 전년 대비 14배 이상 급증하면 품절이 불가피하다”며 “생산량을 늘려도 현장에 물량이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환자가 고통받는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가 주최한 성분명 처방 도입 국회 정책 토론회. 대한약사회 제공 


이어 “시장에서 동일 성분 의약품이 존재해도 약국에 없는 경우가 많아 공급난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성분명 처방은 이런 상황에서 환자 피해를 줄이는 응급조치”라고 강조했다.

반면 의사단체는 대체조제 등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이미 마련돼 있어 성분명 처방 도입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약품 품절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제도만 바꾸면 현실적 대책이 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처방된 약이 없을 때 대부분의 약국에서는 대체조제를 할 수 있고, 사후 통보도 가능하다”며 “이 같은 절차가 운영되고 있는 상태에서 성분명 처방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국가필수의약품의 성분명 처방 도입 법안에 반대하며 거리 집회에 나선 의협 대의원들의 모습. 이찬종 기자


또 “대체조제할 약마저 부족하다면 성분명 처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성분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협과 약사회는 성분명 처방뿐 아니라 의약품 부족 사태의 해법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의협은 국가가 직접 나서 생산량이 부족한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약사회는 관리체계를 강화해 공급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협 관계자는 “최근에 발생했던 에토미데이트 공급 부족 사태를 보면 정부가 나서서 원료 수입이나 약가 인상 등의 정책적 조치로 생산량을 늘릴 방법을 찾았다”며 “성분명 처방 대신 정부가 나서서 국가필수의약품 증산 방안을 마련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약사회 관계자는 “성분명 처방은 응급조치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족하다”며 “의약품 생산·공급 관리 시스템과 현장의 괴리를 줄여야 환자들의 약국 뺑뺑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나 의약품 관련 정부 부처에서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며 생산 체계를 점검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관리체계 강화를 통해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의협과 약사회의 성분명 처방을 둘러싼 대립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가필수의약품에 대한 성분명 처방 법안이 의료계의 반대로 통과 여부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가 약국 뺑뺑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도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한 약사는 “의사단체와 약사단체가 성분명 처방을 두고 대립하는 동안 아이 해열제가 없어 방황하는 보호자들이 늘고 있다”며 “정부가 입법을 기다리기보다 현장 불편을 줄일 실질적 대응책을 내놔야 한다”고 전했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