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정복을 향한 의약품의 발전은 끝이 없다. 그 중심에 선 것이 바로 ‘방사성의약품’이다. 방사성의약품은 암 진단과 치료를 아울러 기존 약물이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까지 확장하며 제약·바이오기업들의 임상연구가 활발하다. 과연 방사성의약품이 정밀의료의 다음 세대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2편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
방사성의약품 산업이 높은 기대감 속에 활발한 연구개발(R&D)이 이뤄지고 있지만, 산업 발전을 위해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까다로운 안전성·유효성 심사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방사선 안전 규제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이중 규제로 인해 개발 속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개발 병목 현상을 해소하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일한 한국원자력의학원 원자력병원 핵의학과장은 2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항암제는 기본적으로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공격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위장장애나 골수 억제가 심한데, 방사성의약품은 정확히 암세포에만 작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작용이 확연히 줄어든다”며 “또 이미 전이가 진행된 환자들에서도 비교적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방사성의약품은 저분자, 펩타이드, 항체와 같은 의약품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인 의약품이다. 방사선 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제조와 운송, 보관이 모두 까다롭다. 특히 반감기가 짧기 때문에 일정 시간 내에 환자에게 약물이 도달하지 못하면 약의 효과가 반감된다. 결국 방사성의약품은 물류 시스템, 원자력 기반 생산 인프라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복합 약제’인 셈이다.
생산·관리가 까다로운 만큼 효과는 탁월하다.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α선·β선)를 이용한 방사성의약품은 항체약물접합체(ADC)와 같이 모두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는 표적치료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ADC는 항체에 약물을 탑재해 체내에 투입 시 약효를 발휘하기 위해선 항체가 암세포 표면에 결합한 뒤 세포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내재화 과정이 필요한 반면, 방사성의약품은 세포 내재화 과정이 필수적이지 않다.
만약 암세포가 이 기전을 차단하거나 표적 항원의 성질로 인해 내재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 ADC는 종양 살상 능력이 미미하거나 치료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방사성의약품은 세포 표면에만 결합해 있어도 방출되는 알파선이나 베타선이 세포막을 뚫고 암세포 핵 내의 DNA를 타격할 수 있다. 또 종양에서 표적 항원이 발현되지 않는 암세포가 숨어 있거나 종양 미세환경이 복잡하더라도 사거리 내에 있다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사멸시킬 수 있다.
방사성의약품은 기존 약물에 대한 내성 기전도 무력화할 수 있다. 이용진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RI신약센터장은 “암세포는 침투한 화학 독성 물질을 세포 밖으로 배출하는 펌프를 생성하거나 대사 작용을 통해 ADC의 치료용 약물(페이로드)에 내성을 갖기도 한다”며 “하지만 방사선은 물리적인 에너지로 DAN 사슬을 직접 절단하기 때문에 화학적인 내성 기전이 통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을 통해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CT(컴퓨터단층촬영) 영상으로 전신의 암 분포와 약물 도달 여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치료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불필요한 치료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면서 “향후 항암 시장은 ADC와 방사성의약품이 상호 보완적으로 성장하거나, 두 기술이 결합된 형태로 개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식약처·원안위 ‘이중규제’…“원스톱 시스템 도입해야”
탁월한 효과가 환자에까지 신속히 이르도록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있다. 임 과장은 “방사성의약품 도입에는 두 가지 숙제가 있다. 하나는 ‘규제’이고, 다른 하나는 ‘급여’다”라며 “규제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아예 약이 들어오질 못하고, 급여 문제를 풀지 않으면 환자가 치료를 받기 어렵다”고 짚었다.
임 과장은 “이중 규제를 하나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방사성의약품 전담 심의기구’가 만들어진다면 임상시험 승인부터 품목허가까지 훨씬 현실화될 수 있다”라면서 “우리나라는 의료 인력도 우수하고, 임상시험 인프라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금만 규제가 현실화된다면 국내 기업들이 방사성의약품 개발과 치료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 센터장도 “현재 방사성의약품 개발에선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방사성동위원소에 대한 규제만 받지만, 임상시험에선 식약처의 승인을 받고 방사성의약품 생산 및 보급에서 원안위의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다”라며 이중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식약처와 원안위가 참여하는 범부처 통합 심사 위원회를 구성해 인허가 절차를 병렬적으로 처리하는 ‘원스톱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사성의약품의 짧은 반감기 특성을 반영해 임상시험용 의료방사성 폐기물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센터장은 “병원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원전폐기물처럼 엄격하게 처리하는 대신 일정 기간 보관해 방사능이 자연 소멸된 후 일반 의료폐기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자체 처분 기준을 현실화함으로써 임상현장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방사성의약품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이 센터장은 “방사능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지만, 방사능 피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방사성의약품은 체내에 투입되기 때문에 더 거부감을 갖는 것 같다”며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의학적 치료는 1941년 미국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갑상샘기능항진증 환자를 처음 치료해 8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뤄지고 있는 안전한 치료법이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