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폴란드 정부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 ‘오르카 프로젝트’ 사업 수주가 좌초돼 고배를 마시게 됐다. 불과 몇 년 전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승전보를 울렸던 K-잠수함 모델이 유럽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성비’와 ‘납기 준수’를 강점으로 삼아 온 한국 방산이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폴란드는 8조원 규모의 차세대 잠수함 프로젝트인 오르카의 최종 사업자로 스웨덴의 방산업체 ‘사브’를 선정했다. 해당 사업에서 한화오션은 3600톤(t)급 차세대 국산 잠수함을 제안, 정부도 올해 퇴역 예정인 1200톤급 장보고함 무상 양도를 함께 제시했으나, 최종적으로 선정되진 못했다.
이번 실패는 글로벌 방산 시장의 트렌드가 수입국의 특수한 작전 환경과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수요지 중심의 최적화 솔루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인도네시아 해군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한 K-잠수함 사업에서 한국이 성공 모델을 확립했던 흐름과는 다른 양상이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해양 영토가 넓어 범용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한 잠수함이 필요했고, 예산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서구권 경쟁사 대비 합리적인 가격과 기술 이전을 약속한 한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반면 폴란드는 방산 관련 예산이 충분한 상황에서 지정학적 환경을 고려해 업체를 선정했고, ‘바이 유러피안 기조’를 우선으로 뒀다.
한국이 대양 작전 능력이 우수한 3000톤급 잠수함을 제안했지만, 스웨덴 사브는 수십 년간 발트해라는 좁고 얕은 바다에 최적화된 잠수함을 운용해 온 경험을 앞세웠다. 폴란드 해군이 활동할 발트해는 평균 수심이 55m에 불과하고 해저 지형이 복잡해, 대양 작전용 중형 잠수함보다는 작고 민첩한 잠수함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결국 ‘고성능’보다 ‘맞춤형 성능’이 승패를 갈랐다는 평가다.
폴란드는 내년 초부터 진행되는 EU 19개국의 1500억유로 (한화 약 257조원) 규모 무기 공동구매에서 437억3400만 유로(75조488억원)라는 가장 많은 예산을 확보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K-방산의 강점인 ‘가성비’보다 전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지정학적 환경’을 우선 고려해 업체를 선정했다는 분석이다.
정치·외교적 요인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내 안보 불안이 가중되면서, EU와 NATO 회원국들은 무기 도입을 단순한 구매가 아닌 ‘안보 동맹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성능과 가격이 우수하더라도, 유사시 즉각적인 군수 지원과 작전 연계가 가능한 이웃 국가, 즉 ‘유럽 내부 파트너’를 선택한 것이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한국산 무기 수입에 대해 ‘특정국 편중’이라는 우려가 폴란드 내부 여론의 다수를 차지해 그 영향도 컸을 것” 라며 “더불어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기조가 한국의 진입을 막아선 견고한 벽이었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한화오션은 “이번 폴란드 정부의 결정에 아쉬움이 남지만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기울였던 저희의 노력에 부족함이 없었는지 냉철하게 되돌아보며 캐나다, 중동 등 다가올 글로벌 해양 방산 수출사업에 뼈를 깎는 각오로 새롭게 임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정부 차원의 외교적 지원 방식도 질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인도네시아에서 효과적이었던 ‘비즈니스 중심 세일즈 외교’가 유럽 시장에서는 ‘가치·동맹 기반 외교’로 진화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성능 경쟁력이 여전히 강력한 무기이지만 별개로 외교안보적 영향력을 넘어설 수 있는 외교적 채널을 적극 가동해야만 한다”며 “이제는 타겟 시장을 향한 더욱 세밀한 커스터마이징 전략이 필요할 때”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 역시 “전 세계의 모든 무기거래 과정에는 로비스트에 의한 치열한 로비 활동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방위산업 분야에서 로비 활동이 합법적으로 보장됨으로써 이들 활동 영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건전한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는 것도 현지화 전략을 통한 경쟁력 강화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