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1등이어도…고동진 “소부장 뿌리 약하면 중국 속도 못 따라가” [K-산업 구조中심⑦]

HBM 1등이어도…고동진 “소부장 뿌리 약하면 중국 속도 못 따라가” [K-산업 구조中심⑦]

‘탈(脫)중국’을 외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K’라는 이름 아래 한국 산업은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중국의 부품·소재·자본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배터리 원료에서 태양광, 통신장비, 드론, 생활 소비재까지, 산업 곳곳에 스며든 중국 의존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쿠키뉴스는 ‘K-산업 구조中심’를 통해 ‘탈중국’의 구호와 ‘종속’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추적했다. 기술 자립을 내세운 산업정책의 그늘을 해부하고, 산업 자립의 구호가 실질적 공급망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을 짚는다. <편집자주>

기사승인 2025-12-07 06:00:11 업데이트 2025-12-07 09:02:05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12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제기되는 ‘후공정 위기론’을 두고 “한국의 후공정 기술력이 약한 게 아니라, 메모리 중심 산업 구조 때문에 시스템반도체 패키징 경험을 쌓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일축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 의원은 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자체가 작아서 생긴 경험과 규모의 문제이지 기술력 문제는 아니”라며 “실제로 고대역폭메모리(HBM) 핵심 기술인 TSV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후공정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고 의원은 “회로 선폭이 10nm이하로 내려가면서 전공정만으로는 성능 개선에 한계가 생겼다”며 “첨단 패키징이 사실상 성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반도체 밸류체인의 무게중심이 후공정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한국 후공정 산업이 구조적으로 불리한 이유도를 명확히 짚었다. 그는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에서 한국은 2.3%에 불과하다. 미국(72%), 유럽(10.2%), 대만(7.7%)에 한참 뒤처진다”며 “메모리 반도체 위주로 성장하다 보니, 국내 후공정 업체들도 메모리 중심으로 커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시스템반도체는 자동차·스마트폰·AI 등 산업별로 맞춤형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라 후공정의 중요성이 메모리보다 훨씬 크다. 실제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620조원으로, 메모리(179조원)의 3.5배에 달한다.

고 의원은 “시스템반도체는 단가가 비싸고 섬세한 공정이 필요해 후공정 기술이 더 중요하다”며 “그동안 국내는 이런 첨단 시스템반도체 패키징 전문성을 키우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의원은 앞으로 대기업의 후공정 전략도 변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동안 대기업이 자체 후공정을 수행해 왔지만, 앞으로는 비용 효율성과 품질 신뢰성을 위해 전문 업체에 위탁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시스템반도체와 첨단 패키징 부문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TSMC가 대만의 ASE, PTI 등 글로벌 톱5 후공정 업체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경쟁력을 높이는 것처럼, 한국도 전문화된 후공정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12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소부장은 산업의 뿌리…뿌리 튼튼해야 전체가 산다”

고 의원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소부장은 산업의 뿌리다. 뿌리가 튼튼해야 대기업도, 중견·중소기업도 함께 성장한다”고 말했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 소부장 비율은 높지 않다. 장비 시장은 미국(41%)·네덜란드(25%)·일본(22%)이 88%를 점유하고, 소재 역시 일본이 48%로 압도적이다. 한국은 13%로 대만(16%)에도 뒤진다.

고 의원은 “핵심 소부장을 해외에 의존하면 공급망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미중 경쟁과 보호무역이 격화하는 지금은 소부장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올해 처음으로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 대상 ‘직접 보조금’ 제도가 신설됐다. 국비 700억원, 지방비 600억원 등 총 1300억원 규모로, 입지·설비 투자액의 30~50%를 지원하며 기업당 최대 200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국비가 1000억원으로 증액됐다.

고 의원은 “소부장 기업은 기술개발·양산검증·테스트베드 확보까지 모든 단계에서 비용 부담이 크다”며 “직접 보조금은 개별 기업 지원이 아니라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구조를 만드는 핵심 장치”라고 설명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12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반도체는 결국 사람 싸움…노동 규제가 경쟁력 막는다”

고 의원은 인력·노동 제도 문제도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는 결국 사람 싸움인데 지금의 노동 규제로는 중국·대만과 경쟁이 안 된다”며 “개발은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일이 아니라, 몰입해야 기술이 쌓인다”고 말했다. 중국 등 경쟁국들이 연구 인력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강화하고 있으며, 국내 역시 산업 현장의 방식과 속도를 반영한 제도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승부는 생태계 설계…소부장 특별법이 분기점 될 것”

고 의원은 “K-반도체의 지속 가능성은 단기 실적이 아니라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메모리 중심 구조를 넘어 시스템반도체·후공정·소부장 생태계를 구축해야만 한국이 글로벌 경쟁 속에서 독자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그가 추진 중인 것이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소부장 특별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반도체 소부장 협회를 법적으로 설립하고, 협회장이 대통령 소속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도록 규정한다. 현재 위원회에는 반도체 소부장 대표가 없어 현장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협회는 △재정·위탁사업 수행 △R&D 지원 △전문인력 양성 △정책 제안 △공급망 안정화 등 소부장 전반의 기능을 맡게 된다. 정부는 협회 운영에 필요한 재정·행정 지원을 의무적으로 하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협회 설립에 공식 동의한 상태다.

고 의원은 “이 특별법은 단순한 협회 설립이 아니라 K-반도체 산업이 10년 뒤 어떤 구조로 경쟁할지를 결정하는 일”이라며 “기업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책·제도·인력·생태계를 아우르는 국가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이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