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운용 매각, 산 넘어 산…국민연금 발 뺀다

이지스운용 매각, 산 넘어 산…국민연금 발 뺀다

위탁자산 보고서 공개 논란
이지스 국민연금에 유출 경위 해명
운용자산 축소로 매각 지연·무산 가능성 제기

기사승인 2025-12-11 08:08:10

이지스자산운용 전경. 이지스자산운용 제공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출자한 펀드 보고서가 사전 동의 없이 일부 인수 후보들에게 제공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지스운용에 기밀 정보 관리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관련 자금 회수 검토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연기금까지 이탈할 경우 매각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지스운용이 지난해부터 일부 위탁자산 관련 보고서를 잠재적 인수 후보자들에게 전달했다고 보고, 조만간 투자위원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이지스운용이 위탁 펀드 관련 보고서를 사전 승인 없이 한화생명·흥국생명·힐하우스 등에 제공한 사실을 확인하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는 실제 설정액, 평가액, 자산 현황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었으며, 실사 과정에서 회계법인에 제출되면서 외부로 유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서울 역삼동 센터필드 빌딩, 마곡 원그로브 개발사업 등 핵심 자산을 담은 6개 펀드는 국민연금의 사전 동의 없이는 정보 제공이 불가능하도록 약정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지스운용 대표는 지난 9일 국민연금을 직접 찾아 해명을 진행했다. 우선협상대상자인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 역시 10일 입장문을 통해 “거래 전 과정에서 투명성과 준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이지스자산운용의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26조2520억원이며, 이 중 국내 자산이 14조2520억원, 국민연금 위탁자산은 약 2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평가가치 기준으로 전체 운용자산이 7조~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업계는 국민연금이 실제로 자금을 회수할 경우 다른 연기금들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지스운용 관계자는 “실사 과정에서 회계법인에 일부 기본 정보가 제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투자자의 정보가 공개된 것은 아니다”라며 “대표가 국민연금을 방문해 상황을 설명했고, 아직 자금 회수 검토와 관련한 공식 통보는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지스운용은 지난주 인수 희망가로 약 1조1000억 원을 제시한 중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힐하우스는 당초 9000억원대 중반을 제시했으나 본입찰 이후 진행된 ‘프로그레시브 딜(가격 경쟁 입찰)’ 과정에서 약 1500억원을 추가로 올렸다. 반면 흥국생명은 약 1조500억 원, 한화생명은 9000억 원대 중반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흥국생명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인 지난 9일 “매각주간사가 본입찰 전 ‘프로그레시브 딜은 하지 않겠다’고 밝혀 이를 신뢰하고 최고가를 제시했는데, 이후 절차가 변경됐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흥국은 또 “입찰가가 힐하우스에 유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이번 거래는 ‘중국계 사모펀드와 외국계 주간사가 공모한 합작품’으로 자본시장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힐하우스는 다음날 반박 입장을 내고 “거래 전 과정에서 매각주관사의 절차와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으며, 투명하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인수는 힐하우스 계열 삼티AMC가 주도할 예정이며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 성장 지원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잡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연금과의 갈등까지 겹치며 매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 자금(약 7조~8조원 규모)이 빠져나가면 운용자산(AUM) 축소로 기업가치 재산정이 불가피해지며, 거래 재협상 또는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부동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힐하우스가 인수전에 참여한 뒤부터 매각 자체가 틀어질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은 현재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앞두고 있다. 심사는 자금 출처와 재무 건전성 등을 기준으로 대주주 자격을 검증할 예정이다.
임성영 기자
rssy0202@kukinews.com
임성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