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국민 앞에서 협치와 타협을 말했지만, 여전히 빈 구호에 그치고 있다. 다수당의 입법 독주와 함께 소수당의 물리적 저지를 막겠다며 13년 전 도입한 ‘국회 선진화법’은 취지가 무색하다.
국회의 갈등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19대 ‘빈손국회’, 20대 ‘식물국회’, 21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22대 국회는 임기 절반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단체인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으로부터 F학점을 받았다.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은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 평가는 C였다. 22대 국회는 이를 갈아치우면서 ‘갈등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 상태로 여야의 정쟁이 이어진다면 되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대 국회였던 2019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하자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맞섰다. 보수 진영은 공천 절차 개편, 선거구 획정, 비례대표제 개편을 담은 법안을 두고, ‘진보 진영의 정치적 파이를 키운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장면은 달라지지 않았다. 2020년 12월 민주당 주도로 상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국정원법, 남북관계발전법 등을 막기 위해 국민의힘은 다시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법안의 성격과 쟁점은 달라도, 여야가 충돌하는 방식은 판에 박힌 듯 반복됐다.
22대 국회 역시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일 개회한 12월 임시국회에서 ‘8대 쟁점법안’을 둘러싸고 또다시 필리버스터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장이 개입해 61년 만에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사실상 매 국회, 매 연말 정치권은 충돌을 의례처럼 반복하고 있다.
8대 쟁점법안에는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법 △법왜곡죄 신설을 담은 형법 일부개정안 △대법관 증원 및 법원행정처 폐지 등 사법행정 3법 △4심제 도입을 골자로 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공수처 수사 대상 확대 △정당 현수막 규제 △유튜브 징벌적 손해배상제 △필리버스터 제한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 등이 포함돼 있다. 법안의 논란이 큰 가운데 여야는 협상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정치권은 20대에서 22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갈등을 관리하기는커녕 키워왔다. ‘세 번 보면 알게 된다’는 삼세번의 인내도 이미 한계를 넘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국민에게 책임과 성찰이 아닌, 공허한 명분과 반복적 언사만을 내놓고 있다.
국회 선진화는 제도에 적혀 있는 문장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국회가 이를 잊는다면 ‘선진화’는 더는 기대가 아닌 조롱으로 남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