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의 의미’…지배력 굳힌 이재용, ‘뉴 삼성’ 다음 10년은

‘20%의 의미’…지배력 굳힌 이재용, ‘뉴 삼성’ 다음 10년은

삼성물산 지분 20% 넘겨 ‘책임경영’ 토대 확보
삼성생명법 변수 여전…AI·반도체·바이오 '뉴 삼성' 속도낼까

기사승인 2025-12-19 06:00:14 업데이트 2025-12-19 09:09:32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4년10월21일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이건희 소아암ㆍ희귀질환 극복사업, 함께 희망을 열다, 미래를 열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전량 증여하기로 하면서,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방어선’이 사실상 완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은 최근 삼성물산 지분 1.06%(180만8577주)를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모두 증여했다. 증여일은 2026년 1월2일이다.

이번 증여로 이 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기존 19.93%에서 20.99%로 높아졌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을 정점으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이 1.63%에 불과하지만,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행사해 왔다. 삼성물산은 이 회장이 단일 최대 주주로 있는 유일한 계열사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20% 돌파는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2015년 엘리엇 사태 당시처럼 외부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권에 도전하는 시나리오 자체를 무력화하는 방어선”이라고 평가했다.

엘리엇 사태는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합병’이라며 반대 소송을 제기했던 사건이다. 

NH투자증권은 리포트에서 “이재용 회장의 물산 지분 20% 상회는 수년간 삼성 주가를 억눌러온 지배구조 개편 불확실성이 사실상 해소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며 “오너의 지배력이 안정된 만큼 향후 삼성물산은 배당 확대 및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할 명분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증여 이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그래픽=이혜민


남은 뇌관 ‘삼성생명법’…지배구조 변수 여전

삼성의 지배구조를 흔들 수 있는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 이른바 ‘삼성생명법’이다. 이 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 가치를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 가격’으로 평가하고, 이를 총자산의 3%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상당 부분을 처분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의 연결고리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의 사업 지주회사 전환, 삼성전자 분할·합병 등 다양한 대응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크게 △지분 분산 매각(현 구조 유지)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 △지배구조 재설계(분할·합병 조정) 등 세 가지 방안이 대표적이다.

첫 번째는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인 지분 분산 매각이다. 기존 지배구조를 유지하되, 법이 허용하는 최대 7년의 유예기간 동안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시장에 점진적으로 매각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법을 준수하면서도 당장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지만, 삼성 오너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량의 지분이 시장에 풀릴 경우, 외부 세력의 경영권 개입 여지도 생긴다.

두 번째는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인적 분할한 뒤, 투자회사를 삼성물산이 흡수합병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시나리오다. 이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가 상장 자회사의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을 충족하기 위한 조치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리포트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1% 가운데 약 5.7%(약 44조원 규모)를 처분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경영권 훼손 우려로 해당 지분은 시장 매각보다는 계열사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고, 현실적으로 2대주주인 삼성물산이 이를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투자회사를 지배할 만큼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안 연구원도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매입 자금 마련이 핵심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며 “삼성물산의 재무 구조나 다른 계열사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 번째는 삼성물산이나 삼성전자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삼성물산을 제조 부문과 금융 부문으로 인적 분할하거나, 삼성전자를 분할한 뒤 일부를 삼성물산이 흡수합병하는 복합 구조가 검토될 수 있다. 이는 삼성생명법의 적용을 우회하거나 지배력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법적·재무적 검토가 많이 필요한 시나리오다. 

다만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결국 물산이 전자 주식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계열사나 일반 주주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돌려막기’가 재현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 삼성’ 10년 로드맵…AI·반도체·바이오에 방점

이 회장은 그동안 AI·반도체·바이오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는 '뉴 삼성' 전략을 강조해 왔다. 경영권이 안정된 지금이야말로 장기 투자와 글로벌 인수합병(M&A)에 본격적으로 나설 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11월7일 임시 조직이던 ‘사업지원TF’를 상설조직 ‘사업지원실’로 격상하고 M&A 전담팀을 신설했다. 사업지원실장에는 기획·재무 전문가인 박학규 사장을, M&A 팀장에는 2017년 하만 인수를 주도한 안중현 사장을 각각 선임했다.

이 회장은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스타게이트)’ 협력을 논의하고 기본합의서(LOI)를 체결했다. 이어 11월에는 벤츠 올라 칼레니우스 회장과 전장(전기차·자율주행) 사업 협력을 진행했다. 이미 5월에는 독일 냉난방기기 기업 플랙트그룹을 2조4800억원에 인수하며 신사업 확장에 나섰다.

‘승계’ 논란 넘어 ‘실력’ 증명해야 할 10년

전문가들은 이 회장의 승계 논란을 넘어서 향후 10년간 ‘실력’으로 뉴 삼성을 증명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기업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20% 지분은 외부 공격을 무력화하는 방패 역할을 하겠지만, 앞으로는 AI·반도체에서 어떤 수익을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회장 일가는 고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5년간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분할 납부 중이며, 2026년 4월이 마지막 납부 시점이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이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