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모(IPO) 흥행에 실패하고 상장 후에도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이던 그래피가 11월 이후 반등세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외형이 성장하고, 내후년부터 규모의 경제가 나타나 이익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는 모습이다. 외국인과 개인이 이같은 성장성에 베팅하며 매수에 나서고 있다.
13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그래피는 11월부터 전날까지 65%의 상승률을 보였다. 상장후 공모가(1만5000원)보다 낮은 가격대에서 주가가 움직이던 그래피는 11월부터 오름세를 타며 지난 3일 장중 최고가 2만4250원을 터치하기도 했다.
이 기간 외국인은 그래피를 약 26억4200만원 순매수했다. 개인은 209억8900만원 어치 매수우위를 기록했다. 기관투자가 중에선 연기금이 11월 말부터 조금씩 매수에 나서며 전날까지 17억원 가량을 순매수했다.
지난 8월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그래피는 상장에 앞서 진행한 기관 투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하며 공모 희망가(1만7000원~2만원)보다 낮은 1만5000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당시 기관 경쟁률 182.2대1,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률 39.8대 1에 그친 바 있다.
3D프린팅 원천 소재 개발…형상기억 투명장치 최초 상용화
그래피는 3D프린팅용 맞춤형 레진을 설계·생산하는 소재 전문 기업이다. 자체 올리고머 합성 기술을 바탕으로 원재료를 배합해 특정 용도에 최적화된 3D프린팅 소재를 만드는 것이 핵심 역량이다. 소재 선택 폭이 좁아 활용이 제한적이었던 기존 3D프린팅의 약점을 보완해, 전방(덴탈·의료 등)과 후방(장비·소재) 산업 전반으로 확장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평가다.
특히 세계 최초의 형상기억 투명교정장치 ‘SMA(Shape Memory Aligner)’를 개발하고 상용화에 성공해 관련 성장성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3분기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별도기준) 제품인 형상기억소재(34.6%), 질소경화기(14.3%)가 절반가량, 상품인 3D프린터(20.5%), 스캐너(1.8%) 등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치아 교정기 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힌다. 컨설팅업체 더 씨아이씨 리포트에 따르면 전세계 치아교정 시장은 올해 800억달러(약 118조원) 규모로, 연평균 8%대 성장을 이어가 2030년에는 1160억달러(약 160조원) 수준으로 커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기존 브라켓(메탈 와이어) 대신 투명교정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 뷰 리서치는 글로벌 투명교정 시장이 2023~2030년 연평균 30%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 반면, 전통 브라켓 교정 시장은 정체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했다.
지금까지 글로벌 투명 교정기 시장은 열성형 방식으로 제품을 만드는 미국 ‘얼라인 테크놀로지(Align Technology)’의 ‘인비절라인( Invisalign)’이 높은 시장 지배력을 보이고 있다.
그래피는 3D프린팅 방식과 형상기억 소재를 앞세워 이 시장을 파고든다는 전략이다. 올리고머 합성·배합 기술을 통해 UV 레진의 물성을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운다. 올리고머 자체 합성 기술을 확보한 업체는 전세계 약 50개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덴탈 분야에 상용화한 회사는 10곳 안팎인데 국내 기업 중에선 그래피가 유일하다는 설명이다.
기존의 투명교정장치는 규격화된 동일 두께로만 제작돼 치아·치열 저항력에 따라 시술 기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그래피의 SMA는 형상기억이란 차별화된 소재로 치아를 원하는 방향으로 기존 제품 대비 정확하게 교정할 수 있다는 평가다. 평균 교정 기간이 짧고 불편감도 적다. 아울러 디지털 스캐닝 및 3D 프린터를 통해 병원 내에서 생산이 가능해 시간 절약과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내년 외형성장 본격화·2027년 이익 증가”
그래피는 아직까지는 ‘성장 초입의 적자 기업’이다. 지난해(2023년) 매출액은 100억원, 영업손실 70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매출은 161억원, 영업손실 92억원이었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7.9% 증가한 101억원, 영업손실 99억원을 나타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내년을 기점으로 실적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분석한다. 하태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SMA 관련 SCI급 연구논문 70편 이상을 축적해 학술적 신뢰를 쌓는 한편 미국·중국·남미 등에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며 “지역별 유통 파트너 구축이 진행되고 있어 큰 변수가 없다면 내년에는 의미 있는 매출 증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3만2000원을 제시하며 커버리지를 시작했다.
하 연구원은 “내년 유럽과 미국 수출 증가에 힘입어 매출액은 전년비 96.6% 증가한 346억원, 영업이익은 소폭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영업이익의 본격 증가는 고정비 부담이 크게 감소하는 2027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심의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국가에서 매출이 발생하며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심 연구원은 “원천 소재 개발 기술력을 바탕으로 덴탈 소재 영역 확장 및 고기능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분야로 사업 확장 가능성도 기대돼 중장기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케팅 역량·오버행 물량 확인 필요
다만 ‘기술·제품이 좋다’는 평가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될지는 결국 마케팅·유통 역량에 달려 있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글로벌 덴탈 네트워크 구축,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실패할 경우 기대만큼의 외형 성장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장 후 줄곧 지적된 오버행 이슈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래피는 기업공개(IPO) 이전 벤처캐피탈(VC)에서 약 340억원을 조달했으며, 이 가운데 상장 후 3개월간 보호예수에 묶여 있던 121만2260주(전체 주식수의 10.98%)는 지난달 25일 보호예수 해제 이후 상당 부분 시장에 출회된 것으로 관측된다. 물량 부담은 일부 해소됐지만, 향후 추가 매물 출회 여부는 여전히 체크 포인트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