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안갯속 ‘스테이블코인 제도화’…해외규제 체계는

여전히 안갯속 ‘스테이블코인 제도화’…해외규제 체계는

정부안 지연에 입법 난항…내년 제도화 전망
미·EU·일은 이미 규제 체계 마련·시행 중
전문가들 “락인효과 고려해야…조속한 제정 필요”

기사승인 2025-12-16 11:00:12 업데이트 2025-12-16 11:51:47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원화 스테이블코인 규제 관련 정부안 마련이 지연되면서 본격적인 법안 논의는 사실상 해를 넘길 전망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16일 가상자산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TF는 정부안 대신 국회 주도로 가상자산 2단계(디지털 자산기본법) 입법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금융위원회에 지난 10일까지 정부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으나, 금융당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기한 내 제출이 이뤄지지 않았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 또는 금 같은 특정 자산과 연동해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둔 가상자산이다. 이 중 원화 가치에 연동되는 가상자산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 한다. 현재 국회에 스테이블코인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단독 법안 3건이 계류 중이며, 디지털자산 전반으로 넓히면 총 8건의 법안이 관련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 디지털자산TF는 오는 22일 스테이블코인 입법안(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당은 내년 1월 정부안을 담은 통합 법안을 발의하고, 2~3월경 국회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규제는 특정금융정보법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1단계 법안)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다만 특금법은 자금세탁방지에 초점을 둔 규제체계이며, 지난해 7월 도입된 가상자산법 역시 이용자 보호에 한정돼 있다. 이에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 포괄적으로 규율할 법적 근거가 별도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재 남아 있는 주요 쟁점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감독권, 정책협의체(가치안정위원회) 운영 등에 관한 내용이다. 한국은행은 현재 은행 지분이 51% 이상인 컨소시엄만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으로 제한해 통화 안정성과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접근이다. 반면 금융위는 스타트업·핀테크 업체의 시장 진입을 고려해 지분 비율을 보다 유연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은 규제 정비 가속

한국이 입법에 난항을 겪는 사이 해외 주요국은 속속이 스테이블코인을 규제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올해 7월 연방법인 ‘지니어스 법’을 제정했다. 실제 감독 체계는 규칙 제정과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지니어스법은 은행의 ‘자회사’ 등 연방당국의 인가를 받은 기관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코인 발행 규모의 100% 이상인 준비금은 달러, 단기국채 등 고품질 유동자산으로 보유해야 한다. 만약 발행사가 파산절차를 밟을 경우 준비자산을 별도로 격리하고(도산 격리), 보유자가 채권자보다 우선 상환받도록 규정했다. 또 공시와 외부 감사도 의무화했다.

다만 발행사가 보유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에 이자를 지급하면 사실상 전통적인 은행 예금과 동일한 기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하는 배경에는 발행 규모가 커질수록 미국 국채에 대한 안정적인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로 USDT, USDC 등 주요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준비자산의 상당 부분을 미국 국채로 보유하고 있다.  

EU는 미국보다 한발 앞서 2023년 6월 가상자산 규정인 미카(MiCA)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요건 등을 규정했다. 이는 지난해 6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미카법의 특징은 ‘단일 라이선스 체계’를 통해 한 회원국에서 인가를 받은 사업자는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유럽 전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유럽중앙은행(ECB)의 권고로 가상자산 발행자에 대한 인가 거부나 취소가 가능하다.

김민승 코빗 센터장은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안인 지니어스법이 이미 거대한 시장이 확보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미국의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움직임”이라면 “미카법은 넓은 범위의 가상자산 기본법을 유럽 모든 국가에 적용하는 기본법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카법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15곳 중 14곳은 은행이 아닌 전자화폐기관이다. 공시·감사의 경우 가상자산 발행인이 특성·권리·의무 등에 대한 핵심 정보가 포함된 백서를 발행해야 하고, 발행 최소 20일 전에 당국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본 역시 비교적 이른 시점에 제도를 정비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일본의 암호자산 규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2023년 6월 개정 자금결제법을 시행해 은행·신탁회사·자금이동업자 등 허가된 기관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급결제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자금결제법으로 규율하고, 투자 대상이라는 성격은 금융상품거래법으로 보완해 규제하는 체계를 갖췄다.

일본은 발행사가 파산할 시 이용자의 자산 반환을 위해 자산의 국내 보유 명령도 도입했다. 준비금은 자산 안정성을 위해 전액 요구불예금으로 보관하도록 하되, 일부는 저위험 국채나 단기 예금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올해 3월 규제를 완화했다. 

미국, EU, 일본 모두 안정성 확보를 위해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1:1 비율로 준비금을 유지할 것을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지난 10월 일본의 핀테크 기업 JPYC은 엔화 스테이블코인 ‘JPYC’를 정식 발행했다. 일본 금융 당국 심사를 통과한 최초의 엔화 스테이블코인이다. 

전문가는 한국도 글로벌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조속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대훈 한국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금융권의 스테이블코인 추진 현황’ 보고서에서 “소비자가 한번 익숙해지면 다른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락인(lock-in) 효과를 고려해 해외 금융기관들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며 “본격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해외 사례(미국, 유럽, 호주 등)처럼 관련 법규의 조속한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태은 기자
taeeun@kukinews.com
김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