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암생존자 6만 시대…“살아남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암을 이겨낸 청년들④]

청년 암생존자 6만 시대…“살아남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암을 이겨낸 청년들④]

기사승인 2025-12-19 11:00:04
의료의 발전은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암 치료 환경을 바꿔놨다. 전체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를 넘었고, 수많은 이들이 병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청년기에 암을 겪은 이들은 학업, 취업, 인간관계 등 삶의 중요한 국면에서 오랜 기간 깊은 단절을 경험한다. 사회적 시선과 제도의 공백 속에서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치료를 넘어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7편에 걸쳐 함께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암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암환자 10명 중 7명은 5년 이상 생존하는 시대다. 의학의 발전이 ‘암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을 바꿔놨지만, 암으로부터의 생존이 모두 일상 회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시기에 암과 싸워야 했던 청년들은 치료 후에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

19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가 발간한 ‘2024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암생존자는 258만8079명으로 2010년부터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체 인구로 보면 암생존자가 5%를 차지한다. 암종별로는 갑상선암 생존자가 21.4%로 가장 많았고, 위암(13.8%), 유방암(12.8%), 대장암(12.6%), 전립선암(5.7%), 폐암(5.1%) 순이었다.

암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전체 암생존자 중 20~30대가 약 4.7%를 차지할 만큼 암은 더 이상 고령 질환이 아니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암을 진단받은 20~39세 암환자는 1만9575명이다. 이 중 갑상샘암(9732명), 유방암(5572명), 대장(직장 및 결장)암(2766명)이 전체의 92%를 차지한다.

최근 5년간(2018~2022년)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3%에 달한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보면, 전체 암 유병자(258만8079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약 159만 명이 암 진단 후 5년 이상 살아간다. 젊은 암환자가 늘면서 암생존자도 증가 추세다. 지난 2010년 3만6174명이던 20~34세 암생존자는 꾸준히 증가해 2022년 6만3786명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젊은 암환자, 우울·불안 2.6배 더 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암 위험이 낮은 건 아니다. 오히려 젊은 나이에 발병한 암은 고령 환자에 비해 암세포가 공격적인 편이다. 하지만 젊은층은 건강검진 대상에 포함되지 않거나 암보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34세 암생존자 현황 그래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김희정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는 “요즘 젊은 사람의 유병률이 높아지는 유방암 치료도 비급여인 부분이 적지 않은데 20~30대에 암보험을 든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며 “청년 암환자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상당할 텐데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정승훈 윤슬케어 대표는 “암을 겪어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정 대표는 “치료를 마치고 병원 밖을 떠나도 재발에 대한 불안이나 우울 때문에 제대로 사회 복귀를 못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치료 종료 후 돌아갈 곳도 없고,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상태가 이어지며 암을 원망하게 되고 계속 주변을 겉돌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의 ‘2008~2022년 암환자 통계’에 따르면, 15~39세 암환자는 65세 이상 환자에 비해 우울, 불안, 두려움을 2.6배 더 경험한다. 전국 14곳(중앙센터 1곳, 권역센터 13곳)에 암생존자의 일상 회복을 지원하는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가 있지만, 청년 암생존자가 이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서지연 부산시의회 의원은 “젊은 암생존자들이 센터를 찾더라도 같은 어려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가서 노인 암생존자들로부터 ‘젊은 사람이 여길 왜 왔어’, ‘어쩌다가 암에 걸렸어’ 등의 질문을 받곤 하는데, 이 역시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각지대 놓인 지원책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가 권역 내 암생존자들을 적절히 관리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뒤따른다. 최수정 가천대 길병원 인천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장은 “인천에만 암생존자가 13만 명에 달한다. 인천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 이들을 우리 센터 직원 3명이 관리하고 있다”며 “계속 상주하며 고정적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어서 사업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장윤정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장이 국립암센터 진료실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청년 암생존자를 지원하는 정책은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 소아암 환자는 암생존자 통합지원체계를 통해 별도 관리되고 있고, 고령층은 지자체나 지역 병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복지 서비스가 이뤄진다. 반면 청년 암생존자는 대부분 비영리재단, 기업, 학회 등 민간 지원에 매달리고 있다.

장윤정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장은 “많은 정책이 소아인 경우이거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한정돼 이뤄지고 있어 연령상 성인으로 분류되지만 이제 막 독립된 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장 센터장은 “암 완치 후 합병증이 없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생존자’라는 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온 사람들을 일컫는다. 외관상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암생존자들은 전쟁 같은 현장을 목격하고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라며 “거창한 게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청년 암생존자들이 스스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게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