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투자‧실험 결실…현대차 사내벤처, 시장에서 존재감 키운다

25년 투자‧실험 결실…현대차 사내벤처, 시장에서 존재감 키운다

장기간 투자·실험, 기업성장 발판
사내벤처, 시장 경쟁력 본격 시험
“정부·기업 지원 병행 지속돼야”

기사승인 2025-12-22 06:00:09
현대자동차그룹 사내벤처 출신 기업들이 기업공개(IPO)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자동차그룹이 20년 넘게 이어온 사내벤처 육성 전략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장기 투자와 기술 검증을 거쳐 분사한 사내벤처 출신 기업들이 최근 기업공개(IPO)와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서며 시장의 평가를 받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실험에서 체계로”…25년 누적된 사내벤처 투자구조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내벤처 육성은 단기 성과를 노린 신사업 실험이 아닌, 장기적인 기술 축적과 사업 검증을 목표로 한 전략적 투자 구조로 평가된다. 현대차는 2000년 사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벤처플라자’를 출범시키며 연구개발(R&D) 조직 내 소규모 실험과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신기술 발굴에 나섰다. 

초기에는 내부 기술 검증과 아이디어 발굴에 방점이 찍혔지만, 시간이 흐르며 분사와 사업화를 염두에 둔 구조로 점차 진화했다. 특히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연구 조직 내에서 검증된 기술을 분사를 통해 독립 법인으로 전환하고 외부 자본과 시장 경쟁 속에서 사업성을 시험하는 체계가 자리 잡았다.

기술 실험→분사→후속 투자로 이어지는 흐름이 자리 잡으면서, 사내벤처는 기술의 사업화 가능성을 단계적으로 검증하는 체계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ZER01NE)’을 중심으로 이 같은 구조가 더욱 정교화됐다. 제로원은 사내벤처뿐 아니라 외부 스타트업과의 협업까지 포괄하며, 기술 실험과 사업 검증을 동시에 추진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모빌리티·로봇·데이터·친환경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내벤처 분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분사한 사내벤처 기업만 40곳에 달하며, 이 가운데 2020년대만 29곳이 출범했다.

벤처 생태계에서는 현대차가 25년간 이어온 사내벤처 투자 구조를 장기적 기술 축적과 사업 검증의 성공 사례로 보고 있다. 내부에서 검증된 기술과 경험이 외부 기업으로 이어지는 체계적 과정이 다른 창업 모델과 차별화된다는 평가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사내벤처는 대기업 내부에서 축적된 기술과 인력이 새로운 사업 주체로 분화되는 방식”이라며 “외부 창업과 달리 기존 산업 경험과 기술 기반을 출발점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창업 모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 입장에서도 내부 혁신을 외부 생태계로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실험은 끝났다…시장으로 나온 사내벤처

현대차그룹 사내벤처 출신 기업들이 잇따라 IPO와 프리IPO 단계에 진입하면서, 사내 기술 실험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평가받는 국면에 들어섰다. 그룹 내부 검증을 거친 기술이 독립 기업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수익성과 성장을 입증할 수 있는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으로는 유아용 카시트 업체 폴레드가 꼽힌다. 현대차 사내벤처로 출범한 폴레드는 2019년 분사 이후 주력 제품을 중심으로 빠른 매출 성장을 이어오며 최근 코스닥 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61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배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3억원을 기록했다. 분사 초기 적자 구조를 벗어나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기술 중심 기업들도 시장 검증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2014년 현대차에서 스핀오프한 디토닉은 시공간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자율주행‧교통‧공공 데이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프리IPO 단계에서 기업 가치를 약 2000억원 수준으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기술 경쟁력이 실제 수익 구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로봇 스타트업 모빈 역시 성장 속도 측면에서 눈에 띄는 지표를 보이고 있다. 매출은 2023년 2000만원에서 지난해 7억5000만원으로 급증했으며, 단일 제품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배달‧순찰‧안전 등 복수의 서비스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실증 중심의 매출 확대 전략을 통해 기술 검증과 시장 검증을 병행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기술 기반의 사업 모델을 앞세워 분사 이후에도 비교적 빠르게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단순 아이디어 수준이 아닌, 그룹 내부에서 장기간 검증된 기술을 바탕으로 출범한 만큼 초기 제품 경쟁력과 사업 방향성이 명확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분사 이후 외부 투자 유치와 사업 확장을 병행하며 자생력을 키워왔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사내에서 보호받던 실험 단계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시장에서의 진검승부가 시작되는 시점”이라며 “기술 경쟁력은 물론 규제 대응력과 사업 실행력이 함께 뒷받침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사내벤처, 투자‧전략 발판 시장 경쟁력 키워야”

사내벤처 출신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시장과 글로벌 경쟁 무대에 나서면서, 단순 기술 검증을 넘어 투자 확보와 성장 전략이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내부 울타리 안에서는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분사 이후에는 자금 운용과 제품 상용화, 규제 대응, 시장 경쟁력 확보까지 종합적인 역량이 요구된다는 분석이다.

사내벤처 출신 한 기업 대표는 “사내에서는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외부 시장에서는 자금과 규제, 해외 진출 등 모든 과제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초기 창업자에게는 매우 큰 도전”이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설명했다. 창업 초기 단계에서는 내부 프로그램이나 모회사 지원을 통해 보호받는 구조이지만, 분사 이후에는 시장 압박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사내벤처가 시장에서 안착하기 위해서는 초기 투자 유치와 정책 지원, 규제 대응 역량을 함께 갖출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내벤처는 울타리 안에서 검증받다가 외부 시장으로 나오는 구조라 기술력과 팀 역량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투자 유치, 규제 대응, 기업 경쟁력까지 함께 갖춰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체계적인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의 역할도 강조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 4대 강국 도약 종합대책’을 통해 AI‧딥테크 스타트업 1만개 육성, 연 40조원 규모의 벤처 투자 확대, 글로벌 창업 허브 구축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사전 규제 중심에서 사후 규제 중심으로 전환해 기술 상용화와 시장 적응을 돕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네트워크와 투자 환경 강화 방침도 내세웠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번 계획의 목표는 단기 지원을 넘어 기술·자본·인재·시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지속 가능한 벤처 성장 구조를 구축해, 벤처가 국가 성장의 핵심 엔진으로 작동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사내벤처가 외부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 역량 강화와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사내벤처가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기술력뿐 아니라 투자 유치, 규제 대응, 글로벌 전략까지 함께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환경이 조성될 때, 사내벤처가 향후 국내를 넘어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도 자생력을 발휘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민재 기자
vitamin@kukinews.com
송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