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경북 포항에 거주하는 박정훈(40대·가명)씨는 집 근처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위암이 의심됩니다. 큰 병원 가보세요.” 그동안 별다른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의사의 말은 충격이었다. 검사 결과 위암 2기였다. 진료와 치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진단 한 달 만에 수술받았다. 암이 더 커지기 전에 잡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수술 후 지역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추적검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2년 차부터는 3개월 한 번씩 병원을 찾았다. 이후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했는데, 2024년 10월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복부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주치의 말에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위암이 재발했습니다.”
박씨는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암은 이미 복막 쪽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가장 먼저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생각났다. 딸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치료받자고 다짐했다. 수술이 어려워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일본 글로벌 제약사 아스텔라스제약의 표적항암제 ‘빌로이’(성분명 졸베툭시맙)로 치료받았다. 지난 4월 처음 투여해 지금까지 총 9번 주사를 맞았다. 부작용은 거의 없었다. 치료를 시작하고 투여 2회 만에 전이된 암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후에도 암이 더 커지지 않고 건강이 잘 유지되고 있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대신 비용에 대한 부담이 남았다.
“교수님이 보험이 되는 약과 빌로이를 비교해 치료 방법을 제시해 줬어요. 빌로이는 비급여 약물이었는데 치료 효과 통계가 비전문가인 제가 봐도 좋았어요. 그래서 이 약을 비싸더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치료가 우선이었거든요.”
실손보험과 정부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약값을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금액은 박씨가 부담하고 있다. 집이 포항이어서 치료를 위해 서울을 오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딸을 생각하며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치료받으며 ‘우리 딸내미 교복 입은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어요. 잘 치료받아서 그 바람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위암 발생 위험 큰데…“치료 제한적”
위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높지만, 병기가 진행될수록 치료 성과가 급격히 떨어지는 암으로 꼽힌다. 특히 전이성 위암의 경우 항암치료 외에는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최근 표적치료제가 국내에 도입됐지만,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은 여전히 낮은 상황이다.
김형돈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최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이성 위암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복막 전이는 예후가 매우 불량해 효과적인 치료제를 사용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이득이 제한적”이라며 최선의 치료 옵션으로 최대한 빠르게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위암 발생 위험이 큰 국가로 꼽힌다. 인구 10만 명당 위암 발생률은 27.0명으로, 몽골과 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4.1명)과 영국(3.6명) 대비 약 7배 높은 수준이다. 위암은 병기가 진행될수록 낮은 생존율을 보인다. 국가암통계에 따르면 초기 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97.4%로 높은 수준이나, 종양이 원발부에서 떨어진 장기에 전이되는 원격전이 시 5년 상대생존율은 5대 국가암(갑상선암, 대장암, 폐암, 위암, 유방암) 중 7.5%로 가장 낮다. 전이 및 절제 불가한 진행성 위암의 경우 생존 기간은 1년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암은 전이가 돼도 광범위하게 암이 퍼져 있지 않으면 증상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증상이 없는 시기에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의 시간은 상당히 짧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이암의 기대여명은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 3~4개월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복막 전이가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는 암의 진행 양상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먹는 게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고, 담도가 막히는 등 여러 합병증이 동반돼 추가적인 시술적 중재가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2기 위암은 보조항암치료를 하더라도 약 30%의 재발 위험이 있으며, 3기의 경우 40~60%까지 재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크기가 작은 조기 위암이나 국소적인 진행성 위암은 수술로 치료할 수 있지만, 원격전이가 있는 전이성 위암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 항암치료 효과를 높이고 생존율을 개선하기 위해선 위암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치료 전략이 필요한데, 그간 위암에선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의 발견이 저조했다.
위암을 표적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는 HER2(인간표피성장인자수용체2), PD-L1 등이 있지만, HER2 표적치료제를 제외하면 치료제 선택이 제한적이다. 이 현황을 바꾼 게 빌로이다. 빌로이는 HER2 음성 전이성 위암의 1차 치료로 허가된 최초의 표적치료제이자 전체 전이성 위암 환자의 38%가 보유한 ‘CLDN18.2’(클라우딘18.2) 바이오마커를 타깃하는 항암제다.
‘빌로이’ 급여 기준 설정…“빠른 급여 필요”
빌로이는 임상시험에서 클라우딘18.2 양성, HER2 음성인 절제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위선암, 위식도 접합부 선암 환자에서 유의미한 생존 이점을 보였다. 무진행생존기간(PFS) 중앙값은 빌로이 투약군이 10.61개월로 대조군(8.67개월)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25% 낮췄다. 전체생존기간(OS) 중앙값 역시 빌로이 투약군이 18.23개월, 위약군이 15.54개월로 빌로이 투약군에서 유의하게 증가했으며, 사망 위험도 25% 더 낮았다. 한국인 환자 대상 하위 분석 데이터에선 전체 생존 기간 중앙값(mOS)이 30개월에 달했다.
빌로이는 전 세계 위암 치료의 표준치료요법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위암학회는 지난 1월 위암 치료 가이드라인 개정과 함께 HER2 음성이면서 클라우딘18.2 양성 환자의 1차 치료로 빌로이를 최고 수준으로 권고하고 있다. 김 교수는 “HER2의 경우 표적 발현율이 10~15%밖에 되지 않는 반면, 전체 전이성 위암 환자의 38%에서 클라우딘18.2가 발현돼 환자의 3분의 1 정도가 빌로이를 통해 치료 혜택을 볼 수 있다”며 “기존 치료 옵션의 사각지대에 있던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의료진은 환자들에게 빌로이를 적극적으로 권하지 못한다. 환자마다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첫 투여는 약 800만원, 두 번째 투여는 약 6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비급여 약제이기 때문에 비용을 환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상당수의 환자가 약제비를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좋은 치료 옵션이 있는데 경제적 부담 때문에 쓰지 못한다면 환자 본인도 아쉽지만, 가족들의 죄책감이 상당하다”며 “약제의 효과가 입증됐다면 빠르게 급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 과정이 다소 느리다”고 짚었다. 일본은 허가와 동시에 보험 급여가 적용된 것과 비교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월 빌로이는 건강보험 급여로 가는 첫 관문인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를 통과했다. 앞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를 통과한 뒤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건보 급여를 적용받게 된다.
김 교수는 “최근 빌로이의 급여 기준 설정 소식이 전해져 환자들이 언제 급여 적용 가능한지 절박하게 물어보는데 의료진은 빨라야 1년 뒤에나 가능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환자 접근성 향상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알지만, 약제가 환자들에게 닿기까지의 기간이 너무 길다. 급여 기준이 결정됐다면 그 뒤의 후속 절차들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이성 위암은 젊은 연령대임에도 불구하고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 많다. 젊은 암환자가 치료받느라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과 가족에게 큰 불행일뿐더러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치료제 급여화를 바라는 암환자들의 간절한 바람이 제도권에 잘 전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