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류독감은 더 이상 돌발 악재가 아니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서는 거의 매년 겨울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발생 시기도, 대응 방식도 비슷하다. 살처분과 이동 제한, 방역 강화가 반복된다. 그럼에도 농가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반복되는 조류독감 피해 속에서 농민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목소리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
양계 농가에 겨울은 늘 두려운 계절이다. 고병원성 조류독감(AI)은 매년 철새가 도래하는 시기와 함께 반복된다. AI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농가는 ‘언제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겨울을 버텨야 한다.
24일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 따르면 2020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가금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총 312건에 달한다. 지난 겨울(2024년 10월~2025년 4월)에만 47건이 발생했고, 올해 들어서도 9월 이후 17건이 추가로 확인됐다. 조류독감이 매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계절성 재난’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도권에서 양계업을 하고 있는 농가 한 단체장은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농가의 피해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안 걸리면 다행이지만, 한 번 발생하면 농가는 몇 년을 버텨야 한다”고 했다.
살처분은 숫자지만, 농가에겐 생계다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농가는 즉시 사육을 중단해야 한다. 닭을 다시 들이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리고, 그 사이 수익은 끊긴다. 한 번 발생하면 사실상 ‘한 해 농사’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셈이다.
살처분 규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닭과 오리 등 가금류 살처분 건수는 △2020년11월~2021년4월 2993만4000수 △2021년11월~2022년4월 730만7000수 △2022년11월~2023년4월 660만9000수 △2023년12월~2024년4월 366만7000수 △2024년10월~2025년6월 671만수로 집계됐다. 올해 가금류 살처분 건수도 9월 이후 이번 달 22일 기준 388만8000수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산란계는 263만2000수로 전체의 67.7%를 차지한다.
지금까지 지급된 살처분 보상액을 기준으로 추정한 마리당 평균 피해액은 약 6300원 수준이다. 이를 적용하면 올해 산란계 살처분에 따른 피해액만 약 16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9월 이후 17개 농가에서 조규독감이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농가당 약 10억원의 피해를 본 셈이다.
피해는 특정 농가에서 끝나지 않고 누적된다. 이 농가 단체장은 “한 번 걸리면 그해 농사는 끝이고, 회복까지 몇 년이 걸린다”며 “살처분 숫자만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농민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지점은 방역 지침과 현장의 괴리다. 정부는 해마다 방역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지침이 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현장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지침들이 있다”며 “방역을 강화한다면서 농가가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실에선 불가능 지침...책임은 농가 전가”
방역 미흡 여부는 사후적으로 판단된다. 발생 이후 CCTV 확인이나 과거 발생 이력 등을 이유로 보상금이 감액된다. 농가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도 결과적으로 책임을 떠안는 구조라는 인식이 강하다.
현행 제도에서 살처분 보상은 가축 평가액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보상률 상한은 80%다. 방역 수칙 위반으로 판단되면 보상률은 더 낮아진다. 일부 농가는 실제 보상률이 40%대까지 떨어졌다고 호소한다.
그는 “방역을 충실히 해도 최고 보상은 80%이고, 각종 사유로 계속 깎인다”며 “이 구조에서는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농민들이 느끼는 억울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류독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철새 유입은 농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농가 몫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현장의 하소연이다.
그는 “양계장 같은 경우에 혐오 시설로 분류해서 허가를 안 내준다. 그러다 보니 농지를 전용한 경우가 많다”며 “평택이나 아산 같은 데서 조류독감이 많이 발생한 것도 논 가운데 (양계장이) 있는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입장에서는 보상금을 안 주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며 “현장에서 불가능한 방역 대책을 내놓고 지키라고 하는 것은 탁상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세종=김태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