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한 편이지만 갑자기 5킬로그램이 늘어 비만치료제를 맞아보려 합니다.”
고도비만 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출시된 비만치료제가 과도한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이른바 ‘뼈말라족’ 사이에서 ‘뼈말라주사’로 사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흡한 규제와 왜곡된 체형 인식이 비만치료제 오남용을 부추기고 있다며, 인식 개선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만치료제로 널리 알려진 GLP-1 계열 주사제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는 출시 이후 대중의 관심을 빠르게 끌어모았다. 온라인에는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사용법과 후기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까지 등장하며 관심이 확산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두 약물의 매출도 빠르게 늘었다. 위고비는 2024년 10월 출시 이후 1년간 약 410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마운자로는 지난해 8월 출시 후 두 달 만에 약 28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처럼 비만치료제 열풍이 확산되면서 부작용과 오남용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초기 체질량지수(BMI) 30kg/㎡ 이상인 비만 환자이거나, 고혈압·당뇨병·수면무호흡증 등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으면서 BMI가 27kg/㎡ 이상 30kg/㎡ 미만인 과체중 환자에게만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처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오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지만, 다이어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비만치료제가 이른바 ‘뼈말라주사’로 불리며 극단적인 체중 감량 수단으로 소비되는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한 다이어트 카페에는 “키 158cm에 체중 42kg으로 무용을 전공하고 있어 체형 관리가 필요하지만 식욕이 많아 비만치료제를 처방받고 싶다”며 “병원마다 처방을 해주지 않아 체중과 관계없이 약을 처방해주는 곳을 알고 싶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밖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번쯤 ‘뼈말라’ 체형이 되고 싶어 마운자로와 위고비 사용을 고민하고 있다”거나 “운동 대신 약의 도움으로 연예인처럼 마른 몸매를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글이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이 같은 게시물에는 “정상 체중이어도 처방해주는 병원이 많다”며 “주변 병원을 알아본 뒤 약은 특정 지역 약국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식의 정보 공유성 댓글이 달리고 있다.
일부 의료기관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이 비만치료제 ‘최저가 처방 병원’을 안내하고 있다는 점도 오남용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A씨는 “지역에 따라 비만치료제 처방 기준이 크게 다르다”며 “어떤 곳은 병원에서 기기를 이용해 체질량지수(BMI)를 측정한 뒤 기준을 충족해야 처방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이른바 ‘성지병원’에서 비교적 쉽게 처방전을 발급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성지병원’이나 ‘성지약국’ 정보가 공유되기도 한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부적절한 사용으로 인한 오심, 구토, 급성 췌장염 등의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비만치료제 오남용을 막기 위해 일선 의료기관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처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오남용 방지 교육을 진행하더라도, 일부 이른바 ‘성지병원’에서 공장식 처방이 이어진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환자가 약 처방을 요구하더라도 가이드라인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처방을 거부할 수 있는 의료 현장의 판단과 책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일선 병원들이 비만학회나 식약처 등에서 내는 비만치료제 가이드라인을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제도 개선보다 의료기관들의 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학계가 비만의 기준점을 조정할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미국 사례에 맞춘 BMI 수치 기준을 한국 수준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체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함께 나왔다.
이철진 대한비만연구의사회 회장은 “현재 위고비나 마운자로 모두 미국 기준으로 허가를 받아 BMI 30kg/㎡ 이상인 사람만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동양인들은 서양인과 체형이나 특성이 달라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 당뇨가 발생하는 수치인 BMI 25kg/㎡으로 하향해야 하는데, 이런 특징이 반영되지 않아 현장에서 괴리감이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또 “사회적으로 여성들은 저체중을 정상 체중으로 생각하고, 남성들은 경도 비만을 정상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잘못된 인식에서 시작된 유행에 휩쓸리지 않게 전문가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