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가 위암 발생 초기 단계에서 암세포가 주변 환경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장 신호를 만들어 증식하는 핵심 과정을 규명했다.
위암은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에서 흔히 발병하지만, 암이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한 분자적 이해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는 기존 연구가 대장암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대장암은 WNT 신호라는 성장 신호가 유전자 돌연변이로 지속 활성화되는 반면 위암에는 이런 돌연변이가 드물어 성장 원리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번 연구는 위암에서 오랫동안 설명되지 않던 ‘암세포의 자율적 성장’ 메커니즘을 실험적으로 입증해 위암 초기를 겨냥한 새로운 치료전략 마련에 기여할 전망이다.
암세포가 성장신호 직접 생산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은 특정 유전자 변이가 암세포의 자급자족형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연구진은 위암이 막 시작되는 전암 단계에서 암세포가 외부에서 공급되던 성장 신호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과정을 밝혔다.
이를 통해 위 점막 세포가 정상 상태에서는 주변 세포가 보내는 신호에 의존해 성장하지만, 특정 유전자 변이를 획득하면 암세포 스스로 성장 신호를 만들어 증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위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분자적 변화를 이미 지닌 전암 단계 위 점막 세포에 주목했다.
이를 생쥐 모델과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정상 세포와 전암 단계 세포를 비교, 세포 성장에 필요한 외부 신호를 하나씩 제거하며 실험했다.
그 결과 정상 위 점막 세포는 외부 신호가 사라지자 성장이 멈췄지만, 전암 단계 세포 가운데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세포는 외부 도움 없이도 계속 자랐다.
특히 위암 환자의 약 3분의 1에서 발견되는 KRAS 또는 HER2 유전자 변이가 핵심 역할을 했다. 이 변이가 생기면 세포 내부의 MAPK 신호 경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MAPK 신호는 다시 WNT 신호 분자의 생성을 유도했다. WNT 신호는 위 점막 세포가 살아남고 증식하는 데 필수적인 신호다.
정상 위 조직에서는 이 WNT 신호를 주변 세포가 공급한다.
하지만 암 발생 초기에는 암세포가 직접 WNT 신호를 만들어 분비했다.
그 결과 암세포는 더 이상 주변 미세환경(niche)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증식할 수 있는 상태로 바뀌었다.
연구진은 개별 세포 수준에서 유전자 발현을 분석해 MAPK 신호가 활성화될 때 WNT 신호를 만드는 유전자 발현이 뚜렷이 증가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실제 MAPK 신호를 차단하자 암세포의 자율적 성장도 다시 억제됐다.
이는 위암 초기 단계에서 암세포의 독립적 성장이 MAPK–WNT 신호 축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 메커니즘이 실제 환자에게도 적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위암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를 분석했다.
세브란스병원, 독일 드레스덴공대, 칼 구스타프 카루스대학병원과 공동연구로 확보한 환자 세포에서도 같은 신호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KRAS 또는 HER2 변이를 가진 환자 샘플에서 암세포는 외부 신호 없이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이지현 IBS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는 위암 초기 단계에서 암세포가 어떻게 성장 환경으로부터 독립하는지를 실험적으로 규명한 첫 사례”라며 “위암 세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핵심 신호 경로를 밝혀 초기 위암을 표적으로 한 치료 전략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연세대 의대 정재호·김현기 교수팀, 드레스덴공대 및 칼 구스타프 카루스대학병원 다니엘 슈탕게 교수팀과 공동 수행했고, 연구결과는 지난 16일 국제학술지 ‘몰레큘러 캔서(Molecular Cancer, IF 33.9)’에 게재됐다.
(논문명 : Epithelial WNT secretion drives niche escape of developing gastric cancer/ Molecular Cancer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