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인건비제의 덫…기업은행 ‘임금체불’ 논란에 총파업 초읽기

총인건비제의 덫…기업은행 ‘임금체불’ 논란에 총파업 초읽기

내년 1월 중 총파업 계획…2년 연속 시행
‘총인건비제’ 적용 공공기관 특성 상 노사 단독 해결 어려워
전문가 “공운법, 질적 평가 체계 전환 모색할 때”

기사승인 2025-12-27 06:00:05
27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가 지난 24일부터 금융위원회 앞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김태은 기자

IBK기업은행 노동조합이 공공기관 총인건비제로 인한 ‘임금체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총파업을 예고했다. 대통령이 직접 문제 해결을 지시했음에도 금융당국과 경영진의 뚜렷한 후속 조치가 나오지 않자, 노조가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24일부터 금융위원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 중이다. 앞서 노조는 23일 전 조합원 투표를 통해 단독 총파업을 찬성률 91%로 의결했다. 오는 29일에는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전 조합원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내년 1월 중 실제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류장희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기업은행 보상 문제는 대통령 지시 사항”이라며 “대통령 지시 사항은 은행장의 권한이나 금융위의 지침 위에 있다. 그러나 아직 은행장과 금융위는 답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체불수당 현금지급’, ‘초과성과 공정분배’라는 상식적인 노동자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며 “만약 수용하지 않는다면 총파업을 통해 다시 한 번 기업은행 일터의 부조리와 불공정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기업은행의 미지급 시간외수당 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김성태 기업은행장에게 해결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임금체불 때문에 말이 많다”면서 “총인건비를 정해 놓으면 돈이 있어도 지급하지 못하는 공공기관이 있는데, 법률을 위반하면서 운영하도록 정부가 강요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책실에서 이 사안을 챙겨보라”고 강조했다.

이에 김 행장은 “자구노력에 더해 정부 협의가 필요하다”면서 “시간외업무를 줄이는 방향은 효과가 크지 않고, 총액한도 예외 방안은 전체 공공기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 전반에 미칠 영향을 의식한 신중한 답변으로 풀이된다.

현재 기업은행은 직급별로 매월 3급 11시간, 4급 이하 13시간 범위 내에서만 시간외수당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를 초과한 근무시간은 수당 대신 보상휴가로 전환된다. 이로 인해 시간외수당과 성과급 등이 포함된 임금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노조는 누적된 보상휴가를 현실적으로 소진하기 어려운 만큼, 이를 현금 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노동자 1인당 사용하지 못한 보상휴가는 약 35일에 달한다. 이를 수당으로 환산하면 1인당 약 600만원, 전체 규모는 약 780억원에 이른다.

27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가 지난 24일부터 금융위원회 앞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김태은 기자

이 같은 구조는 기업은행이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총인건비제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매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통해 기관별 총인건비 상한선을 정한다. 각 기관은 이 범위 내에서 임금을 집행해야 한다.

총인건비제는 공공기관 예산의 효율적 운영과 방만 경영 방지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올해 기준 공기업 31곳, 준정부기관 57곳, 기타공공기관 243곳 등 총 331개 기관이 적용 대상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약 8500만원으로 4대 시중은행 평균 연봉 약 1억1600만원 대비 30%가량 낮은 수준이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월 기본급의 약 3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것과 달리 기업은행은 이 같은 성과급 지급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경영진이 금융위원회와 내년도 예산을 논의하는 경영예산심의회(경예심) 과정에서 노조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예심은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의 예산을 심의하는 기구로, 기재부는 기타공공기관의 경우 소관 부처가 예산을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는 총인건비 상한선으로 인해 사실상 임금체불이 발생하고 있다며, 총인건비 산정 방식에 대한 예외 적용이나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김 행장의 임기가 내년 1월 2일 만료되는 가운데, 노조는 협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노조는 지난 17일 금융위원회를 OECD 한국연락사무소(NCP)에 제소했다. 금융위가 OECD 다국적기업 책임경영(RBC) 가이드라인을 위반하고, 단체교섭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류 노조위원장은 “12월 초부터 ‘금융위 경예심에 기업은행 노조 요구안을 심의하라’며 금융위 앞 피켓시위를 진행해 왔다”면서 “지난 19일 ‘대통령 지시 사항’으로 ‘기업은행 문제 해결’이 거론된 만큼 사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금융위의 각성과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천막 농성을 시작한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총인건비제가 공공기관 노동권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을 예산으로 통제하는 방식은 총액인건비제, 총정원관리제, 경영평가제 3가지”라며 “시간외수당도 인건비로 잡혀 문제가 발생하는데 임금으로 받을지, 시간으로 받을지는 노동자 본인이 선택해야할 문제로, 제도에 의해 선택이 가로막히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정이나 조건도 고려하지 않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획일적으로 적용해 노동권과 배치되는 결정이 발생한다”며 “공공기관운영법을 단순 양적 잣대가 아닌 ESG를 연계한 질적 평가 체계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김태은 기자
taeeun@kukinews.com
김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