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 약업계의 화두는 ‘약가제도 개편’이었다. 정부가 제네릭(복제약) 가격 인하 등을 담은 약가제도 개편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제약업계의 불만과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제도 개편 추진의 신중한 검토와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대한약사회 등 약업 단체는 7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관에서 신년교례회를 공동 주최하고 새해 덕담을 전하며 약가제도 개편으로 인한 여러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약가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의 골자는 제네릭 의약품의 약가를 대폭 낮추고, 신약 연구개발(R&D) 투자는 강화하는 방안이다. 이에 따라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 전 약가의 53.55%까지 받을 수 있는 제네릭 의약품 최고가는 40%로 인하된다. 이미 건강보험에 등재된 약제에 대해서도 약제별 등재 시점과 현재 약가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순차적으로 조정된다. 계단식 인하와 다품목 등재 관리는 보다 엄격하게 강화된다.
제네릭은 국내 제약사들에 ‘캐시카우’인 만큼 약가 인하는 업계의 최대 악재다. 제약사들은 벌써부터 약가 인하에 따른 매출 축소로 R&D와 설비 투자 감소, 고용 감축이 현실화하고 결국 업계 전반의 성장 동력이 약화할 것으로 우려한다.
실제 제약바이오협회 등이 참여한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설문조사 결과, 설문에 참여한 59개 기업이 약가 인하로 인한 연간 예상 매출손실액은 총 1조2144억원으로 추산됐다. 평균 매출 손실액은 233억원에 달한다. 또 연구개발비는 평균 25.3%, 설비 투자는 3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업계 고용 안정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59개 기업의 종사자는 총 3만9170명으로, 약가 개편안이 원안대로 진행될 경우 1691명이 ‘감축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정부가 산업 현장과 협의를 거쳐 약가제도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연홍 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제도의 재설계를 주문했다. 노 회장은 “제약·바이오산업의 존립을 뒤흔들 수 있는 약가제도 개편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일정에 맞춰 추진하기보다 산업 현장과의 협의를 거쳐 국민 보건, 산업 성장, 약가 재정 간 균형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전에 담은 가치,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과 품질 확보, 국민 신뢰 제고 등은 우리 산업은 물론 범약업계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면서 “정부와 국회 그리고 약업계가 상호 신뢰와 소통을 바탕으로 협력을 이어간다면 국민 건강을 더욱 두텁게 지키고,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높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사들도 약가제도 개편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올해 대규모 약가 인하로 인해 약국가, 유통업계, 제약계 모두 큰 혼란을 겪고 있다”며 “정부는 반복되는 현장의 혼선과 혼란을 최소화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분명한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 회장은 “최소한 재고·청구·정산 시스템이 원활히 가동되도록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며 “올해 의약품 개발,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각 주체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정치권에서도 약가제도 개편에 대한 쓴소리가 나왔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의 제네릭 약가 인하 기조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내며 “사용량·약가 연동제로 제네릭 약값을 인하하는 것은 재정 절감에만 치우친 행정”이라고 짚었다. 최 의원은 대웅제약에서 연구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지내며 제약·바이오업계에서만 25년을 몸담은 인물이다.
의약품 사용량이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약가를 인하하는 구조는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와 거리가 멀고, 오히려 제네릭 의약품의 공급 기반과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 의원은 “국민에게 부담 없이 공급할 수 있는 약은 저렴한 제네릭으로, 신약은 정말 비싸다. 제네릭 약가가 100원 이하로 떨어진다는 건 사실상 ‘생산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재정 건전화만을 이유로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면 한국 제약산업은 결국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약가 인하는 매우 조심스럽게 총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며 “전문가 패널을 구성해 현실적으로 국민에게 질 좋은 의약품을 제대로 된 값에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때가 됐다”고 부연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차관을 향해선 “부탁이니 신경을 좀 써 달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가 산업 현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겠다고 했다. 한 의원은 “산업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 확대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제도는 현장을 이길 수 없으며, 국회는 현장의 노력 위에 합리적 제도라는 든든한 토대를 놓는 곳이 돼야 한다. 국민 건강 목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제약·바이오 전담 조직을 신설해 보다 적극적인 산업 지원에 나설 것”이라며 업계를 달랬다. 이 차관은 “혁신 가치는 보상하고 필수의약품은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균형을 맞추겠다”면서 “현장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혁신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