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데스크 창]

친절하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데스크 창]

기사승인 2026-01-08 13:20:48 업데이트 2026-01-08 13:22:19
인천 한 아파트에서 택배 기사에게 출입료를 요구하는 안내문을 내걸어 논란이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거창한 새해 계획을 세우다 모두 지웠다. 잦은 운동으로 튼튼한 체력을 갖게 될, 영어 공부와 피아노 연주를 다시 시작할, 연말쯤엔 공들여 만든 시리즈 기사를 내놓게 될 한 사람이 수첩 속에서 사라졌다. 실현 가능성도 낮거니와, 당장 하루하루를 버텨내느라 나와의 약속조차 감당할 자신이 없다. 펜으로 직직 그은 성대한 다짐 아래, 대신 이렇게 적었다. 올해는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 되겠다.

친절한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쉽게 살지 않으려는 노력을 택한 사람. 반대로 불친절한 삶의 태도가 얼마나 본능적이고 편한 것인지 익히 깨달았다. 새벽 알람과 동시에 위층 층간소음도 시작이다. 생각해 보면 출근 시간이야 다들 비슷하고, 위층 사람도 준비하는 것뿐일 텐데 짜증이 치밀어 기어코 천장을 흘겨본다. 지하철 안, 빽빽이 선 이들 사이를 비집고 앉으려는 노인을 보고 한숨을 뱉는다. 틈을 어떻게 만들지 궁리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인색해진다. 탓할 사람은 없다. 노약자석 앞에 선 탓이다.

사소한 태도들이 모여 사회의 공기를 만든다.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들을 참아주는 일은 손해다. 화면을 눌렀다 지웠다 반복하는 굽은 등 뒤로, 사람들의 시선이 쌓인다. 설명 한마디 대신, 빨리 끝나길 바라는 한숨이 먼저 흐른다. 단 몇 분의 기다림조차 손실로 여기는 사회에서, 타인의 서툰 속도를 감내하는 건 비효율이다.

매일 문 앞까지 짐을 나르는 배달원에게 엘리베이터조차 내어주지 않는 아파트 풍경도 마찬가지다. 보안과 안전이라는 명분을 세우면, 타인의 노동을 무시하는 일은 정당한 권리가 된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는 일은 위험 요소다. 공간을 같이 쓰는 일은 불필요한 변수다. 상대에게 단 한 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박절함은 이 도시를 유지하는 질서다.

갈등을 조율하고 이해하는 번거로움은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은 쾌적함을 구매하려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다. 아이의 소음, 예기치 않은 불편, 감정을 써야 하는 상황을 미리 걷어낸다. 노인의 느린 속도, 길어질 수 있는 설명, 분위기를 해칠 가능성도 함께 차단한다. 갈등을 겪지 않기 위해 마주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이렇듯 친절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언제나 충분하다. 배려나 양보는 효율적이지도,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시장과 제도의 논리에서 가장 먼저 밀려난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규칙과 통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갈등을 없앨 수 없다. 사람 사이의 완충 장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친절은 미덕이 아니라 완충재에 가깝다. 없어도 당장은 굴러가지만, 충돌이 생길 때 가장 먼저 필요하다. 친절은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망가지지 않게 붙잡아 두는 선택이다.

그래서 올해의 다짐은 거창하지 않다. 조금 손해 보는 쪽을 택하는 것, 불편함을 감수하는 쪽에 서보는 것. 친절이 이 사회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더 위태로운 상태로 치닫는 것은 막아줄 것이라 믿는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