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와 내수 침체, 고환율 등으로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올해 식품·외식·유통 대기업들의 신년사에서는 공통적으로 ‘AI’가 핵심 키워드로 등장했다. 외형 확장이나 공격적인 투자보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비용 구조를 효율화하고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현실적인 전략이 전면에 부상한 것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식품·외식 프랜차이즈·유통기업 총수들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AI를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닌 경영 전반을 뒷받침할 핵심 경쟁력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고객 데이터 분석과 생산·물류·운영 효율 개선 등을 중심으로 한 데이터 기반 경영 전환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동아오츠카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선제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철호 동아오츠카 대표이사 사장은 “AI를 비롯해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진 지금, 핵심 키워드는 ‘준비’”라며 “품질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환경을 고려한 스마트한 생산체계를 완성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AI를 포함한 기술 변화가 경영 환경 전반을 빠르게 바꾸는 만큼, 생산과 조직, 사업 구조 전반에서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보다 구체적인 실행 청사진을 제시한 곳은 제너시스BBQ다. 윤홍근 제너시스BBQ 그룹 회장은 “AI는 선택이 아니라 BBQ 실행 인프라”라며 “검색·주문·조리·물류·조직 운영 전반을 데이터로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AI를 통해 고객 경험을 정교화하는 동시에 가맹점주에게는 예측 가능한 운영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BBQ는 지난해 자사 홈페이지에 ‘AI추천메뉴’ 탭을 신설했다. 자사 애플리케이션(앱)에 국한됐던 서비스를 웹까지 확대한 것이다. 해당 서비스는 소비자의 취향과 선호도를 분석해 맞춤형 메뉴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와 함께 인재 채용 과정에도 AI 역량 검사를 도입하는 등 조직 운영 전반으로 AI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CJ그룹 역시 AI를 둘러싼 위기의식을 분명히 했다. 손경식 회장은 “AI를 중심으로 디지털 기술이 국가와 기업의 최우선 경쟁력이 됐다”고 진단하며 “과거의 문법으로 준비한 사업 전략은 일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시대”라고 선을 그었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사업 현장에 적극 도입해 실행 속도를 앞당기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기조는 그룹 차원의 행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미래기획그룹장은 지난 6일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6’에 참석하는 등 그룹의 중장기 성장 전략 수립과 인공지능(AI)·디지털전환(DT)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상에 착수했다. 참관 인력들은 AI·DT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내외 주요 기업과 유망 스타트업 부스를 참관하고 현장 미팅을 진행하며 협력 가능성을 모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통과 식품을 아우르는 롯데그룹도 AI를 그룹 차원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신동빈 회장은 “변화의 뒤를 쫓는 수동적인 태도로는 성장할 수 없다”며 “PEST 관점에서 변화의 흐름을 예상하고 전략과 업무 방식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력한 도구인 AI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재화하고 그 잠재력을 활용해 변화를 선도하자”고 주문했다.
업계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식품·외식·유통업계 전반에서 AI 활용을 둘러싼 실험과 현장 적용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단기간에 전사적·전면적 도입이 이뤄지기보다는, 고객 데이터 분석과 일부 생산 공정 자동화, 재고·발주 관리 등 효과가 비교적 뚜렷한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가 활용되면 고객 구매 이력과 취향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제품 기획과 마케팅 효율이 높아질 수 있고, 공장에서는 생산 효율을 높이거나 불필요한 공정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영업 단계에서도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고 관리나 발주, 거래처별 제안이 정교해지면 전반적인 운영 효율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AI 상용화를 위해서는 기술 고도화뿐 아니라 이를 운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조직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며 “식품 제조 분야 전반에 완전한 AI 도입이 이뤄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