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근무와 순환 인사가 일상인 조직에서, 가족친화경영은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럼에도 한국전력공사는 15년째 가족친화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2년간 남성 육아휴직자가 2.5배 늘어난 변화는, 한전이 제도를 넘어 문화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승룡 한전 인사처 부장은 8일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장기간 인증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한전만의 저력은 바로 2만3000명의 직원들 그 자체”라며 “전국 15개 본부와 226개 사업장에 흩어져 있는 직원 수만큼이나 다양한 근무 환경과 가족 형태가 존재하는데, 이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섬세하고 고도화된 제도 설계와 운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순환 근무’ 한계, 유연한 제도로 선택권 넓혀
한전의 근무 환경은 가족친화경영을 펼치기에 녹록지 않다. 전체 직원의 90%가 지방 사업소에서 근무하고, 기술직이 7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현장 중심 조직이기 때문이다. 잦은 순환 근무 역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다.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한전이 꺼내 든 카드는 ‘제도의 유연화’다. 한전은 시간선택제, 탄력근무제, 재택근무제 등 3가지 유형의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주 40시간 내에서 근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설계하는 탄력근무제는 연고지가 아닌 곳에서 근무하거나, 돌발적인 현장 업무가 많은 직원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공간적 제약을 줄이기 위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주 3~4일은 사무실에서, 1~2일은 집 근처 스마트워크센터에서 근무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제’도 도입해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동시에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순환 근무로 인한 주거 불안은 지원 제도로 보완했다. 동일 생활권 내 무주택 직원에게 사택을 제공하고, 다자녀 직원에게는 이동 시 가점을 부여한다. 임신 직원 등은 순환 근무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가족 상황을 고려한 촘촘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전력 공급을 책임지는 업무 특성상 태풍이나 폭우 등 재난 상황 시 24시간 비상 대기가 잦을 수밖에 없다. 한전은 매뉴얼을 통한 예측 가능한 비상 대응 체계를 갖추면서도 불가피한 비상·연장 근무 발생 시 작업 휴무나 대체 휴일 등을 적극적으로 부여해 직원들이 육아 시간을 확보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사회와의 연대도 강화했다. 2024년 나주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들과 ‘저출생 협의회’를 구성, 각 기관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다.
결재판 사라진 휴직원… 좋은 ‘제도’를 정착시킨 좋은 ‘시스템’
제도가 있어도 눈치가 보이면 무용지물이다. 한전은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를 시스템으로 해결했다. 직원이 근태 시스템에 출산 예정일만 등록하면, 임신 전 기간 사용할 수 있는 단축근무가 별도 결재 과정 없이 자동 승인된다.
유연근무제 활용도 역시 높다. 현재 전 직원의 50% 이상이 주 40시간 내에서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탄력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다. 다만,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공동 근무 시간(Core Time)으로 지정해 부서 간 협조와 민원 대응에 차질이 없도록 자율과 책임의 균형을 맞췄다.
“휴직해도 승진 가능”…남성 육아휴직자 56.1%의 비결은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남성 직원들의 육아휴직 참여에서 나타났다. 2023년 290명이었던 남성 육아휴직자는 2024년 495명, 2025년에는 747명으로 늘었다. 불과 3년 사이 2.5배 이상 증가하며,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56.1%에 달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회사의 명확한 인사 방침이 있었다. 한전 인사처 박민지 차장은 “취업규칙과 인사관리지침을 통해 육아휴직 기간 전체를 승진, 승급, 연차 산정을 위한 재직기간으로 100% 인정하고 있다”며 “휴직으로 인한 인사상 불이익을 원천 차단한 것이 남성 직원들이 주저 없이 육아에 뛰어들게 한 기폭제”라고 설명했다.
생애주기별 맞춤 지원도 강화했다. 2010년부터 선제적으로 도입한 ‘난임치료휴직’은 최대 2년까지 사용할 수 있어 직원들의 신체적·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2024년부터는 둘째 자녀 출산 시 200만 원, 셋째 이상은 300만 원의 출산장려금을 신설해 경제적 부담도 덜어주고 있다.
제도를 넘어 문화로 정착…‘지속 가능한 행복’을 향해
딱딱한 제도뿐만 아니라 감성을 터치하는 이벤트도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부부의 날(5월 21일) 진행한 ‘Say with a ROSE’ 행사가 대표적이다. 한전 인사처 박민지 차장은 “출근길 나눠준 장미꽃을 들고 점심시간에 배우자를 찾아가 선물했다는 후기가 쏟아졌다”며 “가족친화제도가 직원의 가정에 행복을 더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라고 전했다.
한전 인사처 현승룡 부장은 “가족친화제도는 단순한 복지를 넘어,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지속 가능한 근무 환경을 만드는 핵심 동력”이라며 “직원들이 행복한 일터가 되어야 국민에게도 최상의 전력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경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국 전력 공급을 책임지는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저출산 위기 속에서도 가족친화경영 성과를 내며 주목받고 있다. 한전은 저출산과 인구문제 해소를 위한 법률 및 지침 개정을 매번 누락없이 반영하고, 이를 제도화하여 직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2011년 가족친화인증을 획득한 이래, 3년마다 진행되는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며 15년째 인증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2만3000여 임직원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제도와 이를 독려하는 문화의 결합이 돋보인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기업문화 속에서 다양한 가족친화제도들을 운영하며 '가족친화문화'를 조성했다.
△가족친화 인증이란 가족친화인증제도는 성평등가족부가 주관하는 제도로, 자녀 출산·양육 지원, 유연근무제 운영 등 일과 가정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는 근무 환경과 조직문화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기업과 공공기관에 인증을 부여한다. 한국전력공사는 가족친화인증을 2011년 최초로 획득한 이후, 3년마다 재인증 심사를 통과해 15년째 인증을 이어오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