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여행사로 알려진 영국의 ‘토마스 쿡’은 1841년 여행을 산업으로 정의했다. 이후 단체 이동, 가격 표준화, 일정 설계가 이뤄지면서 여행은 낭만이 아닌 시스템이 됐다. 180여년이 흐른 지금, 그 전설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한국 관광은 이제 막 질주를 시작했다.
유럽에 비하면 한국 관광의 역사는 짧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한국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K-팝과 K-드라마, K-푸드가 국경을 넘었고, 정부와 공공기관은 ‘K-관광 3000만 시대’를 말한다. 인바운드를 분석하고, 연구하고, 계획한다. 데이터도 넘쳐난다.
그런데도 지역관광은 늘 제자리다. 이유는 단순하다. 데이터는 쌓인 것 같지만 활용이 미미하고, 관광객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담론의 공백은 분명하다. 정작 가장 치열했던 시장, 내국인 아웃바운드를 살피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의 아웃바운드 시장은 글로벌 OTA와 로컬 여행사들이 가격·기술·상품·마케팅으로 생존을 걸고 싸워온 전쟁터다. 살아남은 전략만 축적된, 가장 잔인하고도 정교한 교과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인바운드를 키우는 해답은 인바운드 보고서가 아니라 이 전쟁터 안에 있다.
최근 여행 애플리케이션 마이리얼트립의 ‘익스클루시브’ 전략은 그 힌트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상품 확장이 아니다. 데이터로 수요를 감지하고, 운영으로 품질을 보증하며, 이동을 통제함으로써 잠재 시장을 실제 시장으로 바꾼 실험이다. 첫 익스클루시브 상품으로 기획된 일본의 지방 나오시마, 구마모토의 경우 여행자들이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불편, 정보 부족, 실패에 따른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던 곳들이다.
이 전략의 본질을 오해해선 안 된다. ‘선호도가 낮은 지역’을 공략한 것이 아니다. 관광에서 문제로 꼽히는 건 선호가 아니라 접근성, 더 정확히 말하면 예측 가능한 이동이다. 인스타그램에서 강원도는 수십만 번 언급되고, 검색량이 폭증한다. 그러나 실제 판매는 이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고 싶어 한다. 다만, 길이 불확실하고 실패 리스크가 클 때 지갑을 닫는다.
공급 부족은 낮은 수요 때문이 아니라, 인공지능(AI)과 운영 체계 사이 ‘안전한 다리’가 놓이지 않았다는 신호다. 전문 도슨트, 전용 차량, 확정 출발, 노팁·노옵션이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자 억눌렸던 수요는 즉시 구매로 전환됐다. 이는 데이터가 수요를 ‘발견’하는 단계를 넘어, 행동을 ‘유도’하는 단계로 진화했을 때 벌어지는 변화다.
이 구조는 한국 인바운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국의 지역축제는 1170여개, 출렁다리는 254개, 관광 케이블카는 43개에 이른다. 자원은 넘치지만 외국인 관광객은 여전히 서울과 부산, 제주에 머문다. 지방에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무도 ‘어디로, 언제,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지’ 예측하고 설계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해변, 경주의 야경, 남해의 섬들은 이미 SNS 속에서 수백만 번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언어 장벽, 복잡한 교통, 불확실한 일정은 관심을 구매로 바꾸지 못한다. 문제는 공급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이동 경로를 설계할 지능의 부재다.
그렇다면 누가 이 다리를 놓을 것인가. 민간은 초기 실패 리스크 앞에서 주저하고, 지자체는 성공 모델 없이 예산을 태울 수 없다. 이 지점에서 공공의 역할이 다시 정의된다. 공공은 운영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AI 기반 설계자(Architect)이자 신뢰의 보증인(Certifier)은 될 수 있다.
방법은 명확하다. 첫째, AI로 글로벌 검색·SNS·OTA 데이터를 결합해 ‘언급량은 높지만 방문율은 낮은 지역’을 예측한다. 양양의 서핑, 안동의 고택, 담양의 대나무 숲처럼 관심은 충분하지만 상품이 없는 곳들이다.
둘째, 이 예측 데이터를 민간에 제공하되 ‘공공과 민간 OTA·여행사의 공동 인증’을 조건으로 건다. 셋째, 원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통비만 선택적으로 지원해 AI가 발견한 수요가 실제 이동으로 이어지도록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
핵심은 ‘플러그인 구조’다. 공공은 AI와 데이터로 관광의 운영 체제(OS)를 만들고, 민간은 그 위에서 경쟁하는 애플리케이션이 된다. 진입은 개방하되 지원은 성과 기반으로 차등 지급한다. 잘하는 곳이 더 많은 데이터를 얻고,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AI는 이 과정을 다시 학습하며 예측 정확도를 높인다.
이 모델이 작동하는 순간, 데이터는 보고서에 머물지 않는다. ‘데이터 → 예측 → 이동 → 소비 → 환류’라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데이터는 통계가 아니라 전기처럼 흐르기 시작한다. 해답은 거창한 축제가 아니다. AI로 설계된 ‘큐레이션된 이동’이다. 소규모 프리미엄 이동, 스토리를 설명하는 가이드 그리고 “이 상품은 믿어도 된다”는 명확한 신호. 이동이 서비스가 되는 순간, 지방은 더 이상 먼 곳이 아니다.
토마스 쿡이 여행을 산업으로 만든 것은 이동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 지역관광의 미래 역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AI를 통해 여행자를 얼마나 정확하고, 안전하며, 확신 있게 이동시키고 있는가.
지역관광 활성화는 구호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AI가 수요를 예측하고, 민간이 공급을 만들며, 공공이 신뢰를 보증하는 구조. 그 순환이 작동하는 순간, 예산은 무덤이 아니라 씨앗이 된다. 관광의 해답은 언제나 목적지가 아니라, AI가 설계한 그곳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
[이재환 박사 약력]
현 고양시 문화재단 선임직이사
현 강남구 관광진흥자문위원회 위원
전 한국관광공사 부사장
전 경기도청 도지사 경제특별보좌관
전 서울시립대학교 겸임교수
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전 KT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전 사단법인 한국창업진흥협회 초대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