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 인하가 최종 합의되자, 업계는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였다. 고관세로 짙게 드리웠던 수출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걷히는 듯 했고, 기업들은 생산과 수출 안정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인상 통보는 그 기대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이 같은 불안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지난해 25% 관세 적용 당시 자동차 산업이 입은 타격은 이미 수치로 확인됐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9.2% 급감했다. 기아는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음에도 관세 여파로 영업이익이 28.3%나 떨어졌다. 100대 자동차 부품 상장사의 합산 영업이익도 10% 넘게 줄었다. 특히 중소 협력사의 감소 폭은 20%를 훌쩍 넘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은 완성차 업체를 넘어 부품사와 중소 협력사까지 압박하며 자동차 산업 전반에 부담을 안겼다.
이러한 충격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현대차의 대미 수출 비중은 약 50%, 기아는 40%에 육박한다. 한국GM의 경우 대미 의존도가 80%를 훌쩍 넘는다. 특정 시장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곧 외부 변수에 취약한 구조를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에 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 리스크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상황에서, 관세 압박에 일일이 대응하는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다. 예측 불가능한 발언에 따라 관세율이 오르내리는 환경은 기업들의 중장기 전략 수립을 어렵게 만들고 산업 경쟁력을 위축시킨다. 실제 현장에선 이미 대응 여력 자체가 소진됐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올해 경영 계획을 ‘관세 15%’ 전제로 수립한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습 발언에 생산·투자·판매 로드맵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트럼프 리스크로 산업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수출 다변화와 구조적 전환을 본격적으로 실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문학훈 오산대학교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한 정책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자동차 산업이 고도의 기술 발전과 개발 역량을 축적하며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말처럼 반복되는 관세 변수에 산업 전체가 출렁이는 현실은 지금의 수출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 지를 보여준다. 결국 답은 전환이다. 특정 국가의 정치적 변수에 좌우되지 않는 수출 포트폴리오, 중장기적 관점의 시장 재편, 기술 고도화 등의 전략 없이는 이 같은 위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느냐다.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업계 전반을 흔드는 국면에서 자동차 산업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더 이상 ‘트럼프 입’에 산업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