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 이후 직역단체와 협회 수장 선거에서 친정권 인사가 선출되는 흐름과 달리, 공인노무사회는 지난해 회장 선거에서 보수정당 출신 전직 국회의원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정치적 성향만 놓고 보면 이례적이지만, 노무사회 안팎에서는 이번 선택을 이념의 이동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노무사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무사회 내부에는 오래전부터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노무사 직역이 반복적으로 배제돼 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세무사회가 국세청과 제도 변화 과정에서 긴밀한 파트너십을 형성해 온 것과 달리, 고용노동부는 노무사회를 정책 협의 주체라기보다 일방적인 관리‧감독 대상으로만 인식해 왔다는 불만이다. 이같은 불신이 임계점을 넘게 된 결정적 계기로 ‘산재 국선대리인 제도’ 도입 논란이 지목된다.
대선 공약에서 국정과제로…현장과의 온도차
산재 국선대리인 제도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25년 제21대 대선 당시 내건 노동 분야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산재보상 국가책임제 실현’을 목표로, 산재 입증 책임이 여전히 노동자에게 있는 현실에서 법률 지식이나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취약 노동자가 전문가 도움 없이 불승인되는 사례를 막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이 공약을 국정과제로 삼아 드라이브를 걸었다. 고용노동부는 2025년 9월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기간 단축 방안’을 발표하며, 2026년부터 국선 산재대리인 제도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장해·유족급여를 제외한 업무상 질병 ‘최초 요양 신청’ 단계부터 국선 대리인을 지원하고, 심사·재심사 등 불복 절차까지 포괄하겠다는 방안이다. 관련 예산으로는 약 19억원이 편성됐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는 두 가지 안이 나왔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은 공약 취지대로 ‘최초 신청 단계’부터 지원해 실질적 권리 구제를 강화하자는 입장인 반면,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 안은 불승인 이후의 ‘심사·재심사 단계’에 한해 지원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쪽이다.
“건당 70만원, 최저임금도 안 된다”…현장의 반발
노무사들이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지점은 제도의 현실성이다. 정부가 제시한 국선 보수는 건당 40만~70만원 수준(노동위원회 국선 준용)이며, 지원 대상은 월 소득 300만원 미만 노동자다.
현장에서는 이 기준이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노무사는 “업무상 질병 사건은 자료 수집, 현장 조사, 의학적 소명 등으로 수십 시간의 고강도 노동이 투입된다”며 “70만원은 시간당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 책임 있는 변론이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지원 대상 기준인 ‘월 소득 300만원 미만’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300만원 미만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 이상(약 60~65%)을 포괄하는 범위”라며 “한정된 예산으로 실질적 빈곤층을 돕기보다,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생색을 내는 포퓰리즘적 설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산재 국선대리 논란은 노무사회 내부에 잠재된 불안에 불을 지폈다. 정부가 업계와 실질적인 협의 없이 국정과제로 밀어붙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선거 국면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산재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론이 급속도로 확산했다.
‘점잖은 인물’보다 ‘강경 대응’ 선택한 이유
이런 상황에서 노무사회 내부에서는 “정권과 코드가 맞는 점잖은 인물”보다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강경한 대응형 리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국회의원 경험이 있는 인물이 보수 정당 출신임에도 선출된 배경에는 이러한 ‘공포’와 ‘반발’ 심리가 깔려 있다.
한 노무사는 “정권과 가까운 인사라고 해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건 아니라는 학습 효과가 있었다”며 “필요하다면 정부와 각을 세워서라도 업역을 방어할 강력한 대응력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투표로 이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무늬만 국선 막으려면”…업계가 제시하는 대안
노무사 사회 일각에서는 국선대리 제도를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별 건당 수임 대신 일정 급여를 보장하는 ‘전담 국선 노무사(상근직)’ 도입 △질환 유형별(근골격계, 뇌심혈관 등) 전문 인증제 도입 △무분별한 쇼핑식 신청을 막기 위한 소득 수준별 ‘최소 자기부담금’ 도입 등이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수임료 몇 푼 쥐여주는 방식으로는 ‘무늬만 국선’인 부실 변론을 양산할 뿐”이라며 “노무사회가 주도하는 전문 교육·인증 시스템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