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9일 발표한 부동산 공급대책에 과천 서울경마장 부지를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해당 부지의 소유주이자 운영 주체인 한국마사회와 사전 소통이 전혀 없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마사회 이전은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 문제가 아니라 말산업 전체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지만, 정부가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정책을 발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주인과 상의도 없었다”
31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대책 발표 직전까지 마사회 측과 공식·비공식 협의를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마사회 관계자들은 발표 당일 아침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자신들의 일터가 주택 공급 대상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 소통 부재는 정부 발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드러났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과천 경마장 부지가 국유지인지, 마사회 소유인지 묻는 질문에 즉답하지 못한 채 “실무적으로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후 현장 실무자의 확인을 거친 뒤에야 “마사회 소유”라고 밝혔다.
약 1만 가구 규모의 대단지 조성을 발표하면서도 부지 소유주조차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정책을 발표한 셈으로, 마사회와의 사전 협의가 전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경마장 이전은 ‘마사회’만의 문제 아냐
현장에서는 이번 사안을 마사회만의 문제가 아닌 말산업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마장은 말 생산→육성→경주로 이어지는 말산업 공급망의 최종 수요처다. 특히 서울경마장은 국내 3개 경마장 가운데 유일한 흑자 경마장으로, 국내 경마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핵심 거점이다. 현재 이곳에는 약 2400두의 말이 상주하고 있다.
서울경마장이 흔들릴 경우 영향을 받는 대상은 마사회 직원에 그치지 않는다. 마필관리사, 조교사, 기수, 마주를 비롯해 말 생산 농가와 각종 말산업 종사자 전반이 연쇄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우려다.
실제 말산업 종사자들과 말 생산 농가들은 이번 방침을 ‘산업 존립을 위협하는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생산자 단체를 중심으로 공동 대응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상경 투쟁 등 집단 행동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부동산만 보고 짠 정책”…영천경마장 개장까지 17년
정책의 현실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잇따른다. 정부는 2030년 착공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경마장 이전은 단기간에 가능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제4경마장인 영천 경마공원의 경우, 부지 선정 이후 개장까지 17년이 소요됐다.
현재까지 서울경마장을 대체할 구체적인 이전 부지조차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5년 내 이전을 전제로 주택 착공을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말산업계 관계자는 “대체 부지도 없는 상황에서 이전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말산업 생태계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며 “정부가 부동산 실적을 위해 1차 산업의 뿌리를 뽑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경마장이 사라질 경우 상근직원뿐 아니라 경마지원직, 자회사 직원, 경마 참여 단체 종사자 등 과천경마장 노동자 2000여명이 실직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생존권 걸렸다’…말산업계, 강경 대응 예고
마사회 노동조합을 비롯한 말산업계는 이번 사안을 ‘생존권의 문제’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마사회 노동조합은 정부 발표 당일 성명을 내고 “소통 없는 일방적 정책 추진은 말산업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며 대책 철회를 촉구했다. 마필관리사 노조와 말산업 관련 단체들도 “발표가 지나치게 갑작스러웠다”며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말산업 단체들은 축산·경마 비상대책기구를 중심으로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대응 수위를 높여갈 방침이다. 31일부터는 경마팬을 대상으로 한 서명운동에도 돌입했다.
서명에 참여한 한 경마팬은 “이곳이 없어지면 나이 든 사람들은 어디서 하루를 보내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소일거리이자 삶의 일부였던 공간을 하루아침에 없애겠다는 결정이 너무 가볍다”고 말했다. 마사회 노조에 따르면 서명운동 첫날에만 약 1만명의 경마팬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과천까지 번지는 반발
국내 말산업특구 1호로 지정된 제주도 역시 술렁이고 있다. 경주마생산자협회 관계자는 “서울경마장은 말산업의 핵심 수요처”라며 “이곳이 흔들리면 생산·육성 산업 전반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갈등은 지역 사회로도 확산되고 있다. 과천 시민들 사이에서는 교통 대책 없이 1만 가구가 추가로 공급될 경우 도시 기능과 주거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말산업 종사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정책을 발표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과천 경마장 부지를 둘러싼 논란은 산업과 지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