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박지훈(27)이 또 버석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내 마음속에 저장’을 외치던 천생 아이돌이 갑자기 교복을 입고 볼펜을 휘두르더니 이젠 죽음이 예견된 폐주란다. 그야말로 ‘천의 얼굴’의 행보다. 매 작품 이토록 결이 다른 캐릭터로 분하는데 이질감도 없다. 이는 우연이 아닌 그의 능력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평가가 박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잘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며 여전히 자신을 의심한다고 털어놨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유해진)와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 이홍위(박지훈)의 이야기다. 한국 영화 최초로 조선 6대 왕 단종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제목부터 ‘왕’을 박아뒀다. 극중 왕을 연기하는 배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심지어 어린 나이에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유배를 간 왕이다. 게다가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다. 제작진도 배우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박지훈은 “제안받았을 때 무서웠”지만 장항준 감독의 확신에 힘입어 합류를 결심했다. “비운의 왕이라고 불리는 단종이라는 그분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첫 영화에서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무서움이 컸어요. 그런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게 감독님이 네 번째 미팅 때 ‘단종은 너여야만 돼, 지훈아’라고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집에 가는데 창밖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자신감이 조금 들었어요. 감독님을 믿고 결정한 게 가장 커요.”
이러한 걱정이 무색하게도 박지훈은 훌륭히 자신만의 단종을 만들어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철저히 사료와 전문가의 자문을 바탕으로 했지만 잘 알려진 역사와는 다른 지점이 있다. 단종과 유배지 광천골 사람들의 유대, 단종이 택한 죽음의 방식 등이다. 여기에 박지훈의 고심이 느껴지는 인물 표현이 더해지면서, 그간 드라마적 장치로 소비됐던 단종은 강렬한 주연으로 거듭났다. “당연히 역사를 공부했지만 궁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만나 변화하는 것을 그린 영화라 대본에 더 충실했어요. 또 중점적으로 어떤 것을 만들어갈지 많이 고민했어요. 호흡이라든지 눈빛이라든지 변해가는 과정을 신경 썼어요. 감독님은 톤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저는 의견을 제시하기보다 최대한 감독님 디렉션을 많이 따랐어요.”
또한 박지훈은 인물의 상황에 맞는 외형을 구현하기 위해 체중을 감량했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이 비수기였어요. 스트레스받지 않고 먹고 자고 놀았죠. 그래서 저를 보시고 감독님은 ‘내가 봤던 이미지가 아닌데’ 하셨을 거예요.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다이어트에 들어갔어요. 70㎏에서 조금 더 나갔었는데 두 달 반 동안 15㎏를 뺐죠. 정말 간단한 건데 사과 한 쪽을 먹으면서 버텼어요. 그러다 보니 잠도 안 오고 피폐해지더라고요. 그럼에도 ‘야위었다’는 것보다 ‘피골이 상접했다’ 느낌을 내고 싶어서 쭉 굶었어요. 나중엔 음식을 보거나 먹기만 해도 게워 냈었어요.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 몸을 유지했어요.”
그렇게 박지훈은 장항준 감독을 안심시키고 가장 긴 시간 호흡을 맞춘 유해진까지 사로잡았다. 유해진은 최근 공식석상과 취재진 인터뷰에서 박지훈을 꾸준히 극찬해 그 비결을 궁금하게 했다. 하지만 박지훈은 “그런 건 없다. 뭐라도 만들어서 말하고 싶은데 없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다만 저만의 스타일로 다가갔어요. 무조건 잘 보이려고 계획하는 것보단 빈말 안 하고 자연스럽게 접근하려고 했어요. 선배님이 말수가 적으시고 촬영 세팅 중일 땐 주변을 걸으면서 대사를 읊조리세요. 그럴 땐 눈치껏 행동했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계신 선배님이시고 제가 선배님이 주신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달해 드릴 수 있을지 무서웠어요. 긴장을 많이 했었어요.”
유해진을 보면서 ‘연기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 깨닫기도 했단다. 박지훈은 “웃는 신이 있으면 현실처럼 웃으시는데 그걸 보면서 연기일까, 선배님의 웃음일까 생각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결코 박지훈의 존재감도 유해진에게 뒤지지 않았다. 특히 그의 눈빛에 압도된다는 반응이 많다.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전부터 일찌감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이유 중 하나다. “감독님이 눈빛을 보고 저를 캐스팅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약한영웅’ 버프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을 하면서 (눈빛에) 장점이 있다고 많이 느꼈어요. 눈을 신경 쓰지는 않아요. 대본에 충실하고 그 상황에 들어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앞서 ‘약한영웅’ 시리즈로 배우 박지훈을 분명히 각인시켰지만 사실 그의 모태는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즌2의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이다. 워너원은 2019년 1월 활동 종료를 알렸는데 최근 7년 만의 재결합 소식을 알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신규 리얼리티 프로그램 ‘워너원 고’로 팬들을 다시 만날 예정이다. “(강다)니엘이 형은 군대에 가고 (라이)관린이는 중국에 있어서 그 둘을 제외하고는 다들 흔쾌히 수락해서 너무 재밌게 촬영했어요. 우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 같은 곳을 보고 다 모인 게 뭉클하더라고요. 함께 예쁘게 활동했던 멤버들과 다시 한 곳에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고요. 지금 단체메시지방에서도 서로서로 말 많이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차기작은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가 될 전망이다. 박지훈은 흥행보다 도전에 초점을 맞추고 작품을 고르고 있다. “‘약한영웅’ 찍을 때도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이 악물고 준비했었는데 그 작품 덕분에 제 차기작들이 결정되고 좋은 작품이라고 또 봐주시니까 너무 감사해요. 저는 도전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이 작품은 누가 있으니까 해야지’ 하면서 고르지 않고 저는 아무거나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