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추가 유동성 확보는 국민들이 생산적 금융을 통해 국내 주식시장 투자를 늘리는 것과 해외 투자자 유입을 확대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지금 거래소가 추진하고 있는 24시간 거래체계와 상장폐지 요건 강화는 모두 이를 위한 방안입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5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KRX) 서울사옥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거래시간 연장은 글로벌 추세이자 국내 대체거래소와의 동등한 경쟁 환경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거래시간 연장, 회원사에도 이득…전산 등 최대한 지원”
한국거래소는 올해 6월부터 오전 7~8시 프리마켓, 오후 4~8시 애프터마켓을 도입해 하루 12시간 거래체계를 가동한 뒤, 2027년 말 24시간 주식 거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프리마켓 시작 시각을 오전 8시가 아닌 7시로 앞당긴 배경에는 회원사 의견과 전산 부담, 투자자 편의가 동시에 작용했다는 입장이다. 정 이사장은 “회원사와 협의 과정에서 넥스트레이드(NXT)와 완전히 겹치는 구간보다는 비(非)중첩 시간대 연장을 선호하는 의견이 많았고, 새벽 시간대 전산·인력 부담과 투자자들의 출근 전 거래 수요를 함께 감안해 7시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개인투자자는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장 개시 전 거래 기회가 열린다.
거래시간 연장이 증권사·직원들에게 ‘사실상 강요된 선택’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거래소 회원이 되느냐, 프리·애프터마켓에 참여하느냐는 각 증권사의 자율적인 선택”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글로벌 주요 거래소와 NXT가 이미 거래시간을 확대한 상황에서, 한국거래소만 6시간30분 거래에 머무는 것은 오히려 투자자·시장 모두에 불리하다”며 “국제적인 유동성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이날 자본시장 신뢰 제고를 위해 부실기업 조기 상장폐지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앞서 거래소는 시가총액·매출액 등 상장폐지 요건을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강화할 경우 약 230개 기업이 퇴출 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금융당국에 보고했다. 코스닥 시장에 대해서는 상장폐지 심사를 3심제에서 2심제로 줄이고, 개선기간도 최대 2년에서 1년6개월로 단축할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한국 상장사는 코스피·코스닥 합쳐 약 2700개로, 시가총액이 우리보다 약 30배 큰 미국과 비교했을 때 상장사 수가 절반 수준으로 상당히 많다”면서 “이는 퇴출이 잘 안 이뤄진 결과이자 지수 상승을 제약해온 요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술력 있는 벤처·스타트업에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되, 오랜 기간 기회를 줘도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한 부실기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다산다사’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중복상장에 대해서도 원칙적 축소·금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정 이사장은 국내 중복상장 비중이 약 20% 수준으로, 약 4%인 일본이나 1% 안팎의 미국보다 높은 점을 거론하며 “국내 상장이든 해외 상장이든 자회사·분할회사 상장으로 소액주주 이익이 훼손되는 구조는 동일하다”고 짚었다. 이어 “선진시장 수준으로 중복상장 비율을 줄이고 소액투자자 보호가 가능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코스피 6200 가능…7000은 첨단·혁신 기업 늘어나야”
정 이사장은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이 제시한 ‘코스피 7500’ 전망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현재 한국 증시의 펀더멘털과 밸류에이션을 감안하면 6000선을 넘길 여력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정 이사장은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6배를 넘어섰고, 코스닥은 2.2배 정도로, 코스피·코스닥 합산 PBR은 1.9배 수준”이라며 “이는 일본과 비슷하고, 영국·프랑스·독일(2.3배), 미국(5배대)보다는 낮다”고 설명했다. 내부 추산에 따르면 코스피가 6200선까지 오르면 MSCI 기준 PBR 2.2~2.3배, 즉 선진국 평균 수준에 진입한다는 분석이다. 그는 거래시간 연장, 청산결제 주기 단축(T+2→T+1), 영문공시 의무화 및 MSCI 선진지수 편입 추진 등을 통해 글로벌 자금 유입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지수 레벨 업과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코스피 7000은 프리미엄 시장으로 평가 받는 것”이라면서 “국내증시가 7000 이상의 시장 평가를 받으려면 첨단·혁신 기업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는 등 산업구조 재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코스피·코스닥·코넥스, 구조 재정립 시점
정 이사장은 지난 2013년 코넥스 출범 이후 시장이 정체된 점을 인정하며, 코스피와 코스닥, 코넥스의 역할을 재정립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기술특례 상장제도 확대로 코넥스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코스닥으로 향하는 기업이 늘면서 애초 구상했던 ‘코넥스→코스닥’ 사다리 구조가 약해진 만큼 정책당국 및 국회와 함께 입법·제도 개선을 논의 중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코스닥에 대해선 “여전히 저평가돼 있지만, 사업모델에 실패했거나 부실이 누적된 기업들이 지수를 눌러온 측면이 있다”며 “투자자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기술특례 상장 기업에 대한 전문적·객관적 기술평가를 위해 외부 전문가 풀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했다. 이는 앞서 발표한 상장폐지 요건 강화, BDC 도입, 코스닥 분석보고서 확대, 비상장 인큐베이팅 강화 등 모험자본 활성화 방안과 맥을 같이한다.
이어 “그 과정에서 코스닥 분리 여부와 분리 방식 등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 “정책당국과 국회에서 제안한 입법안을 바탕으로 긴밀히 논의해 가장 적합한 시장 구조 개편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STO 새로운 수익 기반, 신성장동력 될 것”
증권형 토큰(STO) 장외거래소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질문에 정 이사장은 “최종 결정은 금융위가 내릴 사안”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허가를 받을 경우 블록체인 기반 24시간 장외시장과 전통 거래소 시장 간 연계를 통해 새로운 수익 기반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스위스 등에서 이미 주식토큰이 발행·거래되는 사례를 언급하며 디지털 자산 시장 성장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해외 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이 미미한 데 대해서는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 상에서 한국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유치 노력을 강화하겠다”며 “일본처럼 해외 IR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추가 상장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이사장은 “한국 시장은 이미 외국인 보유 비중이 36%를 넘기는 등 글로벌 포트폴리오에서 빼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며 “제도적 선진화와 상품·시장 다변화를 통해 ‘코리아 프리미엄’을 만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