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미 간 관세 협상 타결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 국익 추구(트럼피즘) 압박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관세를 낮추었지만, 한국은 약속을 이행하는데 전혀 진전(no progress)을 보이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고, 한국산 자동차 및 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기 위한 관보 게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미국 국방부는 백악관이 작년 말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을 실행하기 위해 새로운 국방전략(NDS)을 지난 달 발표하면서 한미 군사 동맹 관계의 전략적 변화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반화된 정책적 불확실성’으로 한미 관계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격랑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관세 인상 추진 배경을 파악하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정부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 도중 국회 입법이 너무 느려 국정 운영이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의 입장에선 국내 입법 시스템 지연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명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어 입법 시스템이 정상화되길 바랄 것이다.
미국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진전을 압박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이 감당해야 할 투자 위험성에 대한 미국 내 법적 안전장치는 견고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는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 이행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양해각서는 법적 구속력 없이 미국의 관세 인하에 대한 반대급부로 체결되었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관세의 합법성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 이전에 국내 특별법 제정 및 시행은 우리 스스로 대미 투자 위험성 확대를 자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미국 행정부 교체에 따른 다양한 한미 관계의 변화 속에서도 국방 협력의 경우 비교적 안정적 변화를 유지했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에선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사태 수습을 위한 정치적•정책적 처방이 이재명 정부의 국방 정책 개혁과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나토(NATO)와 같은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중심으로 한 국제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보다는 미국 본토와 국익에 직결되는 사안에 집중하는 ‘21세기형 고립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양국 모두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변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 노력이 부족한 것은 매우 당연한 귀결이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작년 12월과 지난달에 각각 공개한 국가안보 전략(NSS)과 국방 전략(NDS)을 통해 이 같은 우려가 이미 현실화했고, 향후 발표될 핵태세검토보고서(NPR)가 그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공언하였지만, 역설적으로 한미 관계에 있어선 국익 훼손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의 지도자들 역시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국익 중심의 외교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새롭게 굳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교, 군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미국과의 상호 의존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지속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전략적 리스크를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JD 밴스 미국 부통령의 초청으로 41년 만에 최근 미국을 단독 방문하여 고위급 인사들과 교류하는 뜻밖의 기회를 가졌으나 일회성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박진호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